澤水困 · 64괘 사전

初六 — 臀困于株木

初六:臀困于株木,入于幽谷,三歲不覿。
밝음과 명철을 추구초효, 음유가 가장 낮은 곳에 거함 (시작·미천)사효와 정응이나 구제받지 못함깊은곤궁

풀이

초육은 곤(困) 괘의 가장 아래, 하괘 감(坎)의 맨 밑에 놓인 음효다. 음유(陰柔)한 자질로 험난의 밑바닥에 거하니, 곤궁 가운데서도 가장 깊고 어두운 곳이다. 걸어갈 때는 발이 제일 아래이고 앉을 때는 엉덩이가 제일 아래인데, 초육은 곤궁하여 걷지도 못하고 앉아서 곤한 처지다. 가지도 잎도 없는 밑동나무(株木)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으니 그늘도 없고 편히 앉지도 못한다.

初六:臀困于株木,入于幽谷,三歲不覿。

엉덩이가 밑동나무에 곤궁하고, 어두운 골짜기에 들어가니, 삼 년 동안 보지 못한다.

정이천은 이를 두고, 음유한 사람은 곤궁에 스스로 구제할 힘이 없어 반드시 위에 있는 강명(剛明)한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초육의 정응(正應)은 구사이지만, 구사 또한 양이 음 자리에 거해 바르지 못한 데다 곤 괘라 제 앞가림도 버거워 초육을 구해 줄 수 없다. 의지할 곳이 끊긴 채, 어둡고 미혹되어 함부로 움직이면(妄動) 더 깊은 골짜기로 빠져들어 삼 년이 가도록 형통함을 만나지 못한다.

소상전은 그 까닭을 한마디로 못 박는다. “어두운 골짜기에 들어감은, 어두워서 밝지 못한 것이다(幽不明也).” 곤궁이 깊어지는 진짜 이유는 자리가 낮아서가 아니라 밝음(明)을 잃었기 때문이다. 밝으면 애초에 그 깊은 데까지 빠지지 않는다.

삶에의 적용

가장 낮고 가장 추운 자리에 몰렸을 때, 사람은 당황하여 발버둥친다. 그러나 밑동나무밖에 없는 자리에서 몸부림칠수록 어둠은 더 깊어진다. 여기서 지켜야 할 것은 오직 하나, 마음의 밝음이다. 곤궁 그 자체가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곤궁 속에서 어두워지고 미혹되는 마음이 사람을 더 깊이 떨어뜨린다. 밑동에 기대어 힘을 아끼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으며, 정직하고 반듯한 자리를 지켜 앞을 밝게 보는 것 — 몸을 낮추어 견디는 그 고요함이 봄을 기다리는 유일한 힘이다.

훈장님의 풀이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걸어갈 땐 발이 제일 아래, 앉을 땐 볼기(臀)가 제일 아래다 — 初六은 곤의 맨 아래라 볼기가 가지·잎 없는 외대궁나무(株木) 아래 앉은 격이니, 그늘도 없고 앉을 수도 없다(臀困于株木). 게다가 깊은 골짜기에 혼자 빠져(入于幽谷) 삼 년이 가도 구해줄 이를 못 본다(三歲不覿) — 끝내 곤으로 끝날 자다(終困者). (…) 곧 剛明한 위의 사람을 얻어 원조받아야 곤을 면하는데, 困괘라 그 도움이 끊겼다.

'깊은 골짜기에 들어간다(入于幽谷)' 함은 '어둡고 밝지 못해서다(幽不明也)' — 어둡고 못 깨닫고 밝지 못하기(不明) 때문에 빠진 것이다. 밝고 똑똑하면 절대 그런 데까지 이르지 않는다(明則不至於陷). 세상을 미리 볼 줄 알면 안 빠지는데, 무식하고 어두운(不明) 자라 계산도 설계도 안 나와 더 깊이 빠져든다.

張子가 이르되, 곤에 처한 자는 바라야 무구하다(處於困者 貞則无咎) — 정직하고 반듯해야 밝게 보이고, 삐뚤어진 욕심을 가지면 앞이 안 보인다. 그 자리에서 中을 얻지 못한 까닭에 어두워 빠지는 것이니 — 지병은 자기가 밝게 고쳐야지(自治), 의사에게 맡길 정도면 이미 고치기 어렵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경문과 소상전

初六:臀困于株木,入于幽谷,三歲不覿。

초육은 엉덩이가 밑동나무에 곤궁하고, 어두운 골짜기에 들어가니, 삼 년 동안 보지 못한다.

象曰:入于幽谷,幽不明也。

상(象)에 말하기를, ‘어두운 골짜기에 들어간다’ 함은, 어두워서 밝지 못한 것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효사

六以隂柔處於至卑,又居坎險之下,在困不能自濟者也。必得在上剛明之人為援助,則可以濟其困矣。初與四為正應,九四以陽而居隂,為不正,失剛而不中,又方困於隂揜,是惡能濟人之困。

초육은 음유(陰柔)로써 가장 낮은 곳에 처하고 또 감(坎) 험난의 아래에 거하니, 곤궁에 있으면서 스스로 구제할 수 없는 자다. 반드시 위에 있는 강명한 이의 원조를 얻어야 곤궁을 구제할 수 있다. 초효와 사효가 정응이지만, 구사는 양이면서 음 자리에 거하여 바르지 못하고 강을 잃어 중이 아니며, 또 음의 가림에 곤궁하니 어찌 남의 곤궁을 구제하겠는가.

猶株木之下,不能蔭覆於物。株木,无枝葉之木也。(…)臀困於株木,謂无所庇而不得安其居。(…)入于幽谷,隂柔之人非能安其所遇,既不能免於困,則亦迷暗妄動,入於深困。幽谷,深暗之所也。方益入於困,无自出之勢,故至於三歲不覿。終困者也。

밑동나무 아래는 사물을 덮어 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주목(株木)은 가지와 잎이 없는 나무다. ’엉덩이가 밑동나무에 곤궁하다’는 비호할 곳이 없어 편히 거할 수 없는 것이다. ’어두운 골짜기에 들어감’은, 음유한 사람이 만나는 바에 편안하지 못하여 곤궁을 면하지 못하면 어둡고 미혹되어 함부로 움직여 깊은 곤궁에 드는 것이다. 유곡(幽谷)은 깊고 어두운 곳이다. 더 깊은 곤궁에 들어가 스스로 나올 형세가 없으므로 삼 년 동안 보지 못하는 데 이르니, 끝내 곤궁한 자다.

정이천 『이천역전』— 상전

幽不明也,謂益入昏暗,自陷於深困也。明則不至於陷矣。

‘어두워서 밝지 못하다’ 함은, 더욱 어둡고 캄캄한 데로 들어가 스스로 깊은 곤궁에 빠지는 것이다. 밝으면 빠지는 데 이르지 않을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

臀,物之底也。困于株木,傷而不能安也。初六以隂柔處困之底,居暗之甚,故其象占如此。

둔(臀)은 사물의 밑바닥이다. 주목에 곤궁한 것은 다쳐서 편안할 수 없는 것이다. 초육은 음유로 곤궁의 밑바닥에 처하고 어둠에 거함이 심하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다.

주자 어록

或問:臀困於株木如何?朱子曰:在困之下,至困者也。株木不可坐,臀在株木上,其不安可知。又問伊川將株木作初之正應不能庇他說如何?曰:恐說臀字不去。

혹자가 ’둔곤우주목’을 묻자 주자가 답했다. 곤의 아래에 있으니 지극히 곤궁한 자다. 밑동나무에 앉을 수 없으니, 엉덩이가 밑동나무 위에 있으면 그 불안함을 알 수 있다. 또 이천이 주목을 초효의 정응이 비호하지 못하는 것으로 본 것을 묻자, 답하기를 ‘둔(臀)’ 자의 설명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建安丘氏曰:初六居困體之下,故曰臀。株木乃木之无枝者,指九四也。初本與四相應,四方為上六所揜,猶无枝葉之木不能庇覆之,故初不安其居,是臀困于株木也。初又處坎之下,是入于幽暗之谷。雖歴三歲之久,而不能上覿乎四之正應也。

초육은 곤 체의 아래에 거하므로 ’둔’이라 했다. 주목은 가지 없는 나무이니 구사를 가리킨다. 초효가 본래 구사와 응하는데, 구사가 상육에게 가려져 가지와 잎이 없는 나무처럼 비호하지 못하니 초효가 거처를 편히 하지 못함이 ’둔곤우주목’이다. 초효가 또 감의 아래에 처하니 어두운 골짜기에 든 것이다. 삼 년의 오랜 시간을 지나도 위로 구사의 정응을 만나보지 못한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中溪張氏曰:人之體,行則趾為下,坐則臀為下。初六困而不行,此坐困之象也。

사람의 몸은 걸으면 발이 아래가 되고 앉으면 엉덩이가 아래가 된다. 초육은 곤궁하여 걷지 못하니, 이것이 앉아서 곤궁한 상(坐困之象)이다.

평암 항씨(平庵項氏)

平庵項氏曰:初六在坎下,故為入于幽谷,即坎初爻入于坎窞也。

초육은 감의 아래에 있으므로 ’어두운 골짜기에 들어간다’고 한 것이니, 곧 감 초효의 ’감남(坎窞)에 들어감’과 같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雲峰胡氏曰:卦名困,以剛為柔所困也。爻論困義,非特剛困,柔之困亦甚矣。柔之困也,困于株木,困于石,困于葛藟,所困者槎枿之木、纒繞之草。困于石則又甚焉。剛之困,困于飲食,困于金車,困于赤紱。飲食車服皆美物也。六爻别而言之,其崇陽抑隂亦可見矣。

괘 이름이 곤인 것은 강이 유에게 곤궁한 것이다. 효에서 곤궁의 뜻을 논하면 강만 곤궁한 것이 아니라 유의 곤궁도 심하다. 유의 곤궁은 밑동나무·돌·칡넝쿨에 곤궁하니 잘린 나무와 얽히는 풀이요, 강의 곤궁은 음식·금거·적불에 곤궁하니 모두 아름다운 것이다. 여섯 효를 나누어 말하면 양을 높이고 음을 억누름을 볼 수 있다.

합사 정씨(合沙鄭氏)

合沙鄭氏曰:重兌正西,坎正北。兊一隂始得秋氣而蔓草未殺,故為葛藟之困。六三秋冬之交,蔓草葉脫而刺存,故為蒺藜之困。若初六在坎之下,正大冬之時也,蔓草為霜雪所殺,靡有孑遺,所存者株木而已。三爻皆隂,故繫以草木之象。

중태(重兌)는 정서이고 감은 정북이다. 태(兌)의 일음이 가을 기운을 얻어 넝쿨풀이 아직 죽지 않았으므로 갈루(葛藟)의 곤궁이 된다. 육삼은 가을과 겨울의 교차기라 넝쿨의 잎이 떨어지고 가시만 남아 질려(蒺藜)의 곤궁이 된다. 초육은 감의 아래에 있으니 한겨울이라 넝쿨이 서리와 눈에 죽어 남은 것이 밑동나무뿐이다. 세 음효이므로 초목의 상을 달았다.

장자(張子)

張子曰:處困者正乃无咎,居非得中,故幽不明也。

곤궁에 처하는 자는 바르면 곧 허물이 없으나, 거함이 중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어두워서 밝지 못한 것이다.

이 효가 動하면重澤兌(58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