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수산건(水山蹇)의 다섯 번째 자리, 구오는 상괘 감(坎)의 한가운데에 양효로 존귀하게 앉은 군주다. 강건하고 중정(中正)한 덕을 갖췄으되, 하필 험한 물의 복판에 갇혀 있다. 신하 한 사람의 어려움이 한 가지 일에 그친다면, 임금이 감당하는 어려움은 천하 전체의 어려움이다. 그래서 이 자리의 곤경을 대건(大蹇), 곧 비상한 어려움이라 부른다. 그런데 바로 그 극한의 고립 속에서 뜻을 같이하는 벗들이 사방에서 모여든다(朋來). 아래에서 중정으로 호응하는 육이를 비롯해,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스스로 이 자리를 향해 온다.
정이천은 여기서 날카로운 물음을 던진다. 동지가 목숨을 걸고 달려와 돕는데, 어째서 효사에 ’길(吉)하다’는 말이 없는가. 답은 냉정하다. 그 도움만으로는 천하의 큰 어려움을 끝내 구제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강한 임금이 대건에 빠졌을 때 이를 완전히 뒤집으려면 그에 맞먹는 강한 신하가 있어야 하는데, 도우러 온 육이는 음유(陰柔)하여 힘이 모자란다. 정이천은 역사를 들어 대조한다. 탕왕이 이윤을, 무왕이 여상을 얻은 것은 강한 임금과 강한 신하가 만난 경우요, 촉의 유선이 제갈량을, 당 숙종이 곽자의를 얻은 것은 약한 임금이 강한 신하로 위기를 뒤집은 경우다. 그러나 임금이 강하고 신하가 약하면, 아무리 충성스러워도 큰 공(大功)에는 이르지 못한다. 절개를 지키고 의리를 잡았으나 재주가 부족하여 끝내 구제하지 못한 이들이 역사에 어찌 적었겠는가.
주자는 이 자리를 비상한 어려움의 구원자로 읽는다. 존귀한 자리에서 강건중정의 덕을 갖춘 자에게는 반드시 도우러 오는 무리가 있으니, 이 덕을 갖춘 자라야 그 도움에 값한다. 소상전이 ’큰 어려움에 벗이 온다(大蹇朋來)’는 것을 ’중(中)의 절개로써 하기 때문(以中節也)’이라 맺은 까닭이 여기 있다. 벗을 불러 모은 것은 위세나 술수가 아니라, 험한 물 한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켜 낸 중정의 절개다. 위기가 리더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위기 앞에서 자리를 비우고 절개를 놓는 순간이 그를 무너뜨린다.
삶에 들이기
가장 큰 위기일수록 먼저 할 일은 빠져나갈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왜 하필 나인가’라며 밀어내면 오히려 그 곤경에 끌려간다. 어려움을 그대로 인정하고 나를 낮출 때 비로소 대책이 열리고, 흩어졌던 사람들이 그 진실함에 감응해 돌아온다. 몸으로도 익힐 수 있다. 사방에서 압박이 밀려올 때 먼저 힘을 써서 이리저리 움직이면 금세 바닥난다. 아랫배(단전)를 땅에 굳게 내리고 중심을 지켜 버티면 조급하게 무너지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그 중심의 텐션이, 흩어진 기운과 사람을 다시 불러 모은다. 부족함을 감추려 완벽한 척하기보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보다 나은 힘을 받아들이는 것이 실은 더 큰 그릇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양효(大)·임금(尊)이라 '大蹇(큰 어려움)'이다 — 임금이 어려운 때(蹇)를 당하고 또 험(坎)의 한가운데에 빠졌으니(當蹇·險中),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비상(非常)의 어려움이다(非常之蹇·비상사태). (…) 五효는 가장 높으니 아래 효들이 그리로 '오는(來)' 것이라, 벗이 즐거이 도우러 온다.
'大蹇朋來'면 좋은 것이니 '吉'이라 할 법한데 주공이 그러지 않은 것은 — 그 도움으로도 천하의 큰 어려움을 완전히 구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未足濟蹇). 강양中正의 임금(五)이 큰 어려움에 빠졌으나, 도우러 온 二효가 음유(약함)라 — 그 도움만으로는 천하의 어려움을 다 구제 못 한다. 어려움을 면하긴 하나 완전 해결은 안 되니(해결되면 蹇이 아니다), 그래서 '吉'이라 안 했다.
九五는 中正한 덕이 있고 六二도 中正하니, 비록 大蹇을 만나도 그 지킴(절개)을 잃지 않아(不失之守) — 죽어도 제 자리에서 죽는다. 절대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 (…) 자기가 최선을 다하니 보는 친구들이 감동해 다가와 다같이 나라를 바로잡는 공(正邦之功)을 이룬다.
원문과 주석 — 정이천 · 주자 · 중계 장씨 · 노천 모씨 · 정강중 · 판몽기
효사와 소상전
九五,大蹇,朋來。
구오는 큰 어려움에 처했으니(大蹇), 무리(동지)가 온다(朋來).
象曰:大蹇朋來,以中節也。
상전에 이르기를, 큰 어려움에 무리가 온다는 것은 중(中)의 절개로써 하기 때문(以中節也)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傳:五居君位而在蹇難之中,是天下之大蹇也。當蹇而又在險中,亦為大蹇。大蹇之時而二在下以中正相應,是其朋助之來也。方天下之蹇,而得中正之臣相輔,其助豈小也?
5효는 군주의 자리에 거하면서 건난(蹇難)의 가운데 있으니 이는 천하의 큰 어려움이다. 건난을 당하여 또 험(坎) 속에 있으니 이 또한 대건(大蹇)이다. 대건의 때에 2효가 아래에서 중정으로 서로 응하니, 이는 그 무리가 돕기 위해 오는 것이다. 바야흐로 천하의 어려움에 중정한 신하를 얻어 서로 보필하니 그 도움이 어찌 작겠는가?
得朋來而无吉何也?曰:未足以濟蹇也。以剛陽中正之君而方在大蹇之中,非得剛陽中正之臣相輔之,不能濟天下之蹇也。二之中正固有助也,欲以陰柔之助濟天下之難,非所能也。
“동지의 옴(朋來)을 얻었는데도 ’길(吉)하다’는 말이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 답하기를, “족히 어려움을 구제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강양중정한 임금이 바야흐로 대건의 가운데 있는데, 강양중정한 신하를 얻어 서로 보필하지 않는다면, 능히 천하의 어려움을 구제할 수 없다. 2효의 중정함은 진실로 도움이 있으나, 음유(陰柔)한 도움으로써 천하의 환난을 구제하려는 것은 능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自古聖王濟天下之蹇,未有不由賢聖之臣為之助者,湯武得伊呂是也。中常之君得剛明之臣而能濟大難者則有矣,劉禪之孔明,唐肅宗之郭子儀,德宗之李晟是也。
예로부터 성왕(聖王)이 천하의 어려움을 구제함에 성현의 신하가 도움을 주지 않은 적이 없으니, 탕왕이 이윤을, 무왕이 여상(강태공)을 얻은 것(강한 임금과 강한 신하)이 이것이다. 평범한 임금이 강명(剛明)한 신하를 얻어 능히 큰 환난을 구제한 경우는 있으니, 촉나라 유선의 제갈량, 당나라 숙종의 곽자의, 덕종의 이성이 이것이다(약한 임금과 강한 신하).
雖賢明之君苟无其臣則不能濟於難也。故凡六居五,九居二者,則多由助而有功,䝉、泰之類是也。九居五,六居二,則其功多不足,屯、否之類是也。葢臣賢於君則輔君以君所不能,臣不及君則贊助之而已,故不能成大功也。
비록 현명한 임금이라도 진실로 그 (강한) 신하가 없으면 능히 환난을 구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무릇 6(음)이 5에 거하고 9(양)가 2에 거하면(약한 임금·강한 신하) 대부분 도움을 말미암아 공이 있으니 몽(蒙)·태(泰) 등의 부류가 이것이다. 9(양)가 5에 거하고 6(음)이 2에 거하면(강한 임금·약한 신하) 그 공이 대부분 부족하니 둔(屯)·비(否) 등의 부류가 이것이다. 대개 신하가 임금보다 어질면 임금이 능히 하지 못하는 바를 보필하고, 신하가 임금에 미치지 못하면 단지 조금 도울 뿐이므로 큰 공(大功)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傳:朋者其朋類也。五有中正之德而二亦中正,雖大蹇之時不失其守,蹇於蹇以相應助,是以其中正之節也。上下中正而弗濟者,臣之才不足也。自古守節秉義而才不足以濟者豈少乎?漢李固、王允,晉周顗是也。所謂遺大投艱於朕身,人君當此之時,須屈羣策用羣力乃可濟也。
(상전 해설) 붕(朋)은 그 무리(朋類)이다. 5효가 중정의 덕이 있고 2효 또한 중정하여, 비록 큰 어려움의 때라도 그 지킴을 잃지 않고 어려움에 어려움을 무릅쓰고(蹇於蹇) 응하고 도우니, 이것이 그 중정의 절개(中正之節)로써 한 것이다. 위아래가 중정하면서도 능히 구제하지 못한 것은 신하의 재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절개를 지키고 의리를 잡았으나 재주가 족히 구제하기에 부족했던 자가 어찌 적겠는가? 한나라의 이고·왕윤, 진나라의 주의가 이들이다. 서경에 이른바 “큰일을 남기고 험난함을 내 몸에 던졌다(遺大投艱於朕身)“는 것이니, 인군이 이때를 당하여서는 모름지기 뭇 계책을 모으고 뭇 힘을 써야 비로소 가히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및 문답
本義:大蹇者,非常之蹇也。九五居尊而有剛健中正之德,必有朋來而助之者。占者有是德則有是助矣。
대건(大蹇)이란 평범하지 않은 비상한 어려움이다. 구오가 존위에 거하여 강건중정의 덕을 가졌으니, 반드시 무리가 와서 돕는 자가 있을 것이다. 점치는 자가 이 덕을 가졌다면 곧 이 도움이 있을 것이다.
주자 문답(朱子曰):
或問:蹇九五何故為大蹇?朱子曰:五是為蹇主,凡人臣之蹇只是一事,至大蹇須人主當之。問:大蹇朋來之義。曰:處九五尊位而居蹇之中,所以為大。
혹자가 묻기를 “건 구오가 무슨 연고로 대건이 됩니까?” 하니, 주자가 답하기를 “5는 건난을 당하는 주인이기 때문이다. 무릇 신하의 어려움은 단지 한 가지 일일 뿐이나, 큰 어려움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임금이 그것을 감당해야 한다.” 묻기를 “’대건붕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니, 답하기를 “구오의 존위에 처하여 건난의 가운데 거하므로 크다(大)고 한 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中溪張氏曰:九五以陽剛而陷於坎中,是遺大投艱於朕身,夫豈小蹇也哉!斯時也,正望羣賢之來出其險以㧞其禍。幸而下有六二柔順之大臣為之正應,必能朋合來譽、來反、來連、來碩之才,翕然而至,與同心協力共濟九五大蹇之難。苟非二居下體之中,能盡匪躬之節,又安能朋合衆賢于于而來哉!
중계 장씨가 말하였다. 구오가 양강으로서 감(坎, 위험) 속에 빠져 있으니, 이는 ’큰일을 남기고 험난함을 내 몸에 던진 것’이니 대저 어찌 작은 어려움이겠는가! 이때를 당하여, 정히 뭇 현인들이 와서 그 험함을 벗어나고 그 화를 뽑아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행히 아래에 육이라는 유순한 대신이 그의 정응(正應)이 되어, 반드시 능히 초효(내예)·삼효(내반)·사효(내연)·상효(내석)의 재주들을 동지로 모아 흡연히 이르러,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구오의 대건의 환난을 함께 구제할 것이다. 만약 이효가 하체의 가운데 거하여 능히 ’몸을 돌보지 않는 절개(匪躬之節)’를 다하지 않았다면, 또 어찌 능히 뭇 현인들을 동지로 모아 무리 지어 오게 할 수 있었겠는가!
노천 모씨(瀘川毛氏)
瀘川毛氏曰:禍亂,天所以開聖人也。九五德正而位尊,立乎險中,以合天下,使天下之有志者朋來而取節於我。是故自我言之,所謂當位貞吉以正邦也;自朋來者言之,所謂利見大人往有功也。然則九五陷坎險之中所以為蹇也,而其位則君也,治蹇者也。以治蹇之主而居至險之中,此所以撥亂反正乘危致安也歟!
노천 모씨가 말하였다. 화란(禍亂)은 하늘이 성인을 여는(성장시키는) 까닭이다. 구오가 덕이 바르고 지위가 높아 험난함 속에 서서 천하를 합하니, 천하의 뜻 있는 자들로 하여금 무리 지어 오게 하여 나에게서 절개를 취하게 한다. 이런 까닭에 나로부터 말하자면 이른바 ’자리를 얻고 바르게 하여 나라를 바르게 한다’는 것이고, 오는 동지들로부터 말하자면 이른바 ’대인을 만나봄이 이로워 나아가면 공이 있다’는 것이다. 구오는 감험(坎險)의 가운데 빠져 건(蹇)이 된 자이나 그 지위는 임금이니 건(蹇)을 다스리는 자이다. 건을 다스리는 주군으로서 지극한 험난함 속에 거하니, 이것이 어지러움을 평정하고 바름으로 돌이키며(撥亂反正), 위기를 타고 평안함을 이끌어내는(乘危致安) 까닭일 것이다!
정강중(鄭氏剛中)
鄭氏剛中曰:諸爻皆以來為言,與朋來之來異。諸爻之來,自外反内也。朋來之來,自下趍五也。王導之徒是也。
정강중이 말하였다. 여러 효(1·3·4·6효)가 모두 ’오다(來)’로써 말했는데, ’붕래(朋來)’의 ’오다’와는 다르다. 다른 효들의 옴은 밖에서부터 안(아래)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붕래의 옴은 아래로부터 (위로) 5효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동진을 재건한) 왕도의 무리가 이것이다.
판몽기(潘氏)
潘氏曰:五,君位也,而在坎中,蹇孰大焉。然動而不失中正之節,故能感其朋之來,以共成正邦之功也。
판몽기가 말하였다. 5효는 군주의 자리인데 감(坎, 위험) 가운데 있으니 어려움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그러나 움직임에 중정의 절도(中正之節)를 잃지 않았으므로, 능히 그 무리들이 오는 것을 감동시켜, 함께 나라를 바르게 하는 공(正邦之功)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