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건(蹇)은 앞에 험한 물(감·坎)이 흐르고 뒤에 높은 산(간·艮)이 막아, 발이 묶여 나아가지 못하는 어려움의 괘다. 상육은 그 어려움이 극에 이른 맨 꼭대기, 음유(陰柔)한 자질로 괘의 밖에까지 밀려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밖으로 내달리면(往) 갈 곳 없는 벼랑이라 어려움만 깊어지고(往蹇), 고개를 돌려 안으로 돌아오면(來) 도리어 크고 풍성한 결실을 얻는다(來碩). 나아가면 험하고 오면 넉넉하다 — 이 짧은 대비 안에, 극에 이른 고난이 어떻게 뒤집히는지가 담겨 있다.
정이천은 상육이 음유하여 스스로는 어려움을 빠져나올 수 없으나, 안으로 돌아와 구오(九五)를 따르고 구삼(九三)의 강양(剛陽)한 도움을 구하면 그 힘을 빌려 비로소 크고 넉넉해진다(碩)고 풀었다. ’석(碩)’은 큼이자 너그러움이니, 오면 넉넉해져 막혔던 어려움이 풀린다는 것이다. 주자 또한 이미 괘의 끝에 이르러 나아가면 갈 곳이 없으니, 와서 구오에게 나아가 함께 어려움을 건너면 크고 성대한 공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만나야 할 ’대인(大人)’은 곧 강양중정으로 임금 자리에 있는 구오다. 상전이 “뜻이 안에 있다(志在内)”, “귀한 이를 따른다(以從貴)“고 밝힌 그대로, 밖을 향하던 뜻을 안으로 거두어 귀한 이에게 나를 맡기는 것이 이 자리의 살길이다.
정이천은 건 괘의 여러 효가 모두 바름을 얻고도 아직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해 길하다 하지 않았는데, 오직 상육만이 어려움의 극에 처하여 너그러움을 얻었으므로 길하다고 짚었다. 어려움이 다하면 도리어 통하는 이치(물극필반) 때문이다. 다만 이 결실은 홀로 잘나서 얻는 것이 아니다. 상육은 제 재주가 부족함을 알고 자존심을 비워, 아래의 유능한 힘(구삼)을 받아들이고 위의 대인(구오)에게 순종할 때 비로소 큰 그릇이 된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나은 이에게 나를 여는 것이 지는 일이 아니라 도리어 이기는 길임을, 이 마지막 효가 가르친다.
삶에의 적용
오래 시달린 일이 마침내 바닥을 칠 때, 우리는 대개 마지막 한 방을 노리며 밖으로 더 내달리려 한다. 그러나 극에 이른 자리에서 밖을 탐하면 남은 것마저 잃는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돌파가 아니라 방향을 안으로 돌리는 일이다. 흩어졌던 시선과 기운을 나의 중심으로 거두어들이고, 나보다 나은 이에게 기꺼이 나를 맡기는 것. 몸으로 말하면, 사지 끝으로 뻗쳤던 힘을 하단전으로 가라앉혀 중심축을 다시 세우는 일과 같다. 팔다리로 버둥거릴수록 무너지지만, 힘을 안으로 거두어 중심을 잡으면 비로소 배 속이 든든해지고 설 자리가 생긴다. 부족함을 인정해 힘을 빌리고, 밖을 향한 조급함을 안으로 돌이키는 이 이완이야말로, 가장 험한 고비를 가장 큰 결실로 바꾸는 오래된 지혜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上六은 九五보다도 멀어 初爻보다 멀리, 卦의 밖(권한 밖)에 나가 있다. 위로 올라가면 어렵고 갈 곳이 없으니(往蹇), 아래로 내려오면(來) 三효(상응)·四효와 만나 九五 임금의 어려움을 구제한다. '碩(석)'은 큰 일·큰 인물이니(碩=大, 박사·석사의 석) — 내려와 큰 인물이 되어(來碩) 죽어도 좋은 보람 있는 죽음이 되니 길하다(吉).
上六은 재주(才)와 방법이 유순(柔順)하여 본래 어려운 시대를 구제 못할 인물인데, 아래 三효(강양)의 기질을 얻기에(得助) 경영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부족하면 마음을 비우고 유능한 자를 받아들이면 되는데, 사람은 자존심 때문에 그게 안 된다. 못났으면 빨리 못난 줄 알고 더 훌륭한 사람을 받아들이면 그게 도리어 더 잘난 것인데 — '받아들이면 진다'고 착각한다.
모든 효가 다 바름을 얻지 못해(皆不得正) 어려움을 못 벗어났는데, 오직 마지막 上六만이 '홀로 길하다(獨吉)' 한 것은 — 上六이 蹇之極에 거하기 때문이다. 물리로 보아 극단에 가면 도리어 돌아오고(物極則反), 어려움이 극에 가면 반드시 통한다(蹇極必通). (…) 어려운 시대를 벗어날 길이 있으니, 도전하면 길이 열려 보이고, 도망가면 길이 오그라들어 안 보인다 — 마음을 크게 먹으면 틀림없이 길이 보인다.
원문과 주석 — 상육 효사와 소상전, 그리고 정이천·주자·제가
효사와 소상전
上六,往蹇來碩,吉,利見大人。
상육은 나아가면 험난하고 오면 크고 풍성함이니(往蹇來碩), 길하다.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利見大人).
象曰:往蹇來碩,志在内也。利見大人,以從貴也。
상(象)에 말하기를, 나아가면 험난하고 오면 크고 풍성하다는 것은 뜻이 안(內)에 있기(志在内) 때문이요,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 함은 귀한 이를 따르기(以從貴)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효사 풀이 — 왕건내석(往蹇來碩), 오면 너그러워져 어려움이 풀린다
傳:六以陰柔居蹇之極,冒極險而往,所以蹇也。不往而來,從五求三,得剛陽之助,是以碩也。蹇之道,戹塞窮蹇;碩,大也,寛裕之稱。來則寛大,其蹇紓矣。
전(傳)에 이르기를, 육(음)은 음유로서 건난의 극치에 거하니, 극한의 험함을 무릅쓰고 나아감(往)이 건난(蹇)이 되는 까닭이다. 나아가지 않고 오면(來), 오효를 따르고 삼효를 구하여 강양(剛陽)의 도움을 얻으니, 이 때문에 크고 풍성한(碩) 것이다. 건(蹇)의 도(道)는 막히고 궁핍하여 절뚝거림이요, 석(碩)은 큼(大)이니 너그럽고 여유로움을 일컫는다. 오면 너그럽고 커져서 그 험난함이 풀리는 것이다.
蹇之極有出蹇之道。上六以陰柔故不得出,得剛陽之助可以紓蹇而已。在蹇極之時得紓,則為吉矣。非剛陽中正,豈能出乎蹇也?
건의 극치에는 건을 빠져나가는 도(道)가 있다. 상육은 음유하기 때문에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강양(양효)의 도움을 얻어야 가히 건을 풀어낼 수 있을 뿐이다. 건난이 극에 달한 때에 풀림을 얻었으니 길함이 된다. 강양중정(구오)이 아니라면 어찌 능히 건에서 빠져나올 수 있겠는가?
효사 풀이 — 이견대인(利見大人), 대인은 곧 구오다
利見大人。蹇極之時,見大德之人則能有濟於蹇也。大人謂五,以相比發此義。五剛陽中正而居君位,大人也。在五不言其濟蹇之功,而上六利見之何也?曰:在五不言,以其居坎險之中,无剛陽之助,故无能濟蹇之義。在上六,蹇極而見大德之人,則能濟於蹇,故為利也。各爻取義不同,如屯初九之志正而於六二則目之為宼也。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 건이 극에 달한 때에 큰 덕이 있는 사람을 만나보면 능히 건난을 구제할 수 있다. 대인은 오효를 이르니, 서로 친함(相比)으로써 이 뜻을 밝혔다. 오효는 강양중정하여 임금의 자리에 거하니 대인이다. “오효에서는 그 건난을 구제하는 공을 말하지 않고 도리어 상육에서 그를 만나보는 것이 이롭다 한 것은 어째서인가?” 하면, “오효에서 말하지 않은 것은 그가 감(坎, 위험)의 가운데 거하여 강양의 도움이 없어 건을 구제할 뜻이 없기 때문이요, 상육에 이르러서는 건난이 극에 달한 때 큰 덕이 있는 사람(구오)을 만나면 능히 건을 구제할 수 있으므로 이롭다 한 것이다.” 각 효는 뜻을 취함이 같지 않으니, 마치 둔(屯) 괘 초구의 뜻이 바르지만 육이의 입장에서는 그를 도적(寇)으로 지목한 것과 같다.
諸爻皆不言吉,上獨言吉者,諸爻皆得正,各有所然,皆未能出於蹇,故未足為吉。唯上處蹇極而得寛裕,乃為吉也。
다른 여러 효는 모두 ’길하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상효만 유독 ’길하다’고 한 것은, 여러 효가 모두 바름을 얻어 각각 합당한 바가 있으나 모두 건을 빠져나오지 못했으므로 아직 족히 길함이 되지 못한 것이다. 오직 상효만이 건난의 극치에 처하여 너그럽고 여유로움을 얻었으므로 마침내 길함이 된 것이다.
상전 풀이 — 뜻이 안에 있어 귀한 이를 따른다
傳:上六應三而從五,志在内也。蹇既極而有助,是以碩而吉也。六以陰柔當蹇之極,密近剛陽中正之君,自然其志從附以求自濟,故利見大人。謂從九五之貴也。所以云從貴,恐人不知大人為指五也。
상육은 삼효에 응하고 오효를 따르니, 뜻이 안(內)에 있는 것이다. 건이 이미 극에 달했는데 도움이 있으니 이 때문에 크고 길한 것이다. 육이 음유로서 건의 극치에 당하여 강양중정한 임금(오효)에게 바짝 붙어 있으니, 자연히 그 뜻이 그를 따르고 붙어서 스스로 구제받기를 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고 한 것이다. 구오의 귀함을 따름을 이른다. ’귀함을 따른다(從貴)’고 말한 까닭은, 사람들이 대인이 오효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지 못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정자(程子) 어록 — 반신수덕(反身脩德), 건 괘를 관통하는 뜻
程子曰:蹇以反身脩德,故往者,在外也;在外必蹇。來者,在内也;在内則有譽无尤。來連、朋來、來碩,皆反身脩德之謂也。
정자(정이천)가 말하였다. “건(蹇) 괘는 자신을 돌이켜보고 덕을 닦음(反身脩德)으로써 한다. 그러므로 나아가는 것(往)은 밖에 있는 것이요, 밖에 있으면 반드시 험난하다. 오는 것(來)은 안에 있는 것이요, 안에 있으면 (초효의) 명예가 있고 (이효의) 원망이 없다. (사효의) 내연(來連), (오효의) 붕래(朋來), (상효의) 내석(來碩)은 모두 자신을 돌이켜 덕을 닦음을 이른 것이다.”
蹇蹇,不暴進内顧之象也。暴進出外,則无事矣。連,則无窮也。朋來,則衆來。言朋來,未免於有思也。至於來碩,則來處於大人之事也,故曰從貴。
“건건(蹇蹇)은 거칠게 나아가지 않고 안을 돌아보는 상이다. 거칠게 나아가 밖으로 나가버리면 (아무) 일이 없게 된다. 이어짐(連)은 곧 궁하지 않은 것이요, 붕래(朋來)는 대중이 오는 것이다. 붕래를 말함은 생각(사심)이 있음을 면치 못한 것이다. 상효의 내석(來碩)에 이르러서는 곧 와서 대인의 일(大人之事)에 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함을 따른다(從貴)고 한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본의 — 와서 구오에게 나아가 함께 건너면 큰 공이 있다
本義:已在卦極,往无所之,益以蹇耳。來就九五,與之濟蹇,則有碩大之功。大人指九五。曉占者宜如是也。
이미 괘의 끝(극)에 있어 나아가면 갈 곳이 없고 건(어려움)을 더할 뿐이다. 와서 구오에게 나아가 그와 더불어 건을 구제하면 크고 성대한 공(碩大之功)이 있을 것이다. 대인은 구오를 가리킨다. 점치는 자가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함을 깨우쳐 준 것이다.
문답(朱子曰) — 건이 극에 달해 도리어 구제할 이치가 있다
朱子曰:諸爻皆不言吉,葢未離乎蹇中也。至上六往蹇來碩吉,却是蹇極有可濟之理。既是不往,唯守於蹇,則必見九五之大人與共濟蹇,而有碩大之功矣。
주자가 말하기를 “여러 효가 모두 길함을 말하지 않은 것은 대개 아직 건난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육에 이르러 ’왕건내석길’이라 한 것은, 도리어 건이 극에 달하여 가히 구제할 수 있는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밖으로 나아가지 않고 오직 건 안에서 지킨다면, 반드시 구오라는 대인을 만나 그와 함께 건을 구제하여 크고 성대한 공이 있을 것이다.”
제가(諸家)
건안 구씨(建安丘氏) — 여섯 효의 역할 분담과 대의
建安丘氏曰:蹇,難也。詳六爻之義,則處蹇者五也。五在坎中,需衆爻以出險,故大蹇朋來。蹇其蹇者二也。二與五應,與君同患難者,故王臣蹇蹇。
건안 구씨가 말하였다. 건은 험난함이다. 여섯 효의 뜻을 상고해 보면, 건에 처한 자는 오효다. 오효가 감(坎, 위험) 가운데 있어 뭇 효들을 기다려 험함을 빠져나가야 하므로 ’대건붕래(大蹇朋來)’다. 그 건난을 무릅쓰는 자는 이효다. 이효는 오효와 응하여 임금과 환난을 함께하는 자이므로 ’왕신건건(王臣蹇蹇)’이다.
餘四爻雖亦處蹇,以不任濟蹇之責,是以喜來而惡往,故爻以往來為辭。然諸爻中唯三有剛實之才,可以濟難。以與五非近非應,不能從五,唯反而就二,則可與之同往而濟君之蹇。故爻言其來反,而象以内喜釋之,言二亦喜三之來也。
나머지 네 효는 비록 건난에 처해 있으나 건을 구제할 책임을 맡지 않았으므로, 오는 것을 기뻐하고 나아가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효사에서 왕래(往來)로써 말을 삼은 것이다. 그러나 여러 효 중에 오직 삼효만이 강건하고 진실한 재주가 있어 험난함을 구제할 수 있다. 오효와 가깝지도 응하지도 않아 오효를 따를 수 없고, 오직 돌이켜 이효에게 나아가면 가히 이효와 더불어 함께 나아가 임금의 건난을 구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효에 ’내반(來反)’이라 했고 상전에서 ’안이 기뻐한다’고 풀이했으니, 이효 또한 삼효가 오는 것을 기뻐함을 말한 것이다.
在四而言來連者,比三也,故象稱其當位實。在上而言來碩者,應三也,故象稱其志在内。葢當蹇之世,五方待三之來者也。三來則衆爻俱來而蹇可濟矣。獨初六才柔位卑未能有為,故以來譽勉之。此蹇六爻之大旨也。
사효에서 ’내연(來連)’이라 한 것은 삼효와 친비함이니 상전에서 ’제자리를 얻어 진실하다’고 칭했고, 상효에서 ’내석(來碩)’이라 한 것은 삼효와 응함이니 상전에서 ’뜻이 안에 있다’고 칭했다. 대개 건난의 세상을 당하여 오효가 바야흐로 삼효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삼효가 오면 뭇 효가 함께 와서 건난을 가히 구제할 수 있게 된다. 유독 초육만이 재주가 유약하고 지위가 낮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므로, ’내예(來譽)’로써 그를 권면한 것이다. 이것이 건 괘 여섯 효의 대의(大旨)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