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이는 음효가 음의 자리에 놓여 중정(中正)을 온전히 갖추었고, 하괘 리(離)의 한가운데에 거한다. 유순하고 바른, 집안의 안채를 맡은 자리다. 위로는 밖에서 집을 이끄는 가장, 곧 구오와 정응(正應)하여 그를 든든히 받든다. 효사는 이런 육이에게 “스스로 이루려는 바가 없고(无攸遂), 안에서 음식을 주관하니(在中饋), 바르게 하면 길하다(貞吉)“고 한다. 밖으로 나서서 제 성과를 내세우지 않고, 보이지 않는 안쪽 살림을 완벽하게 책임지는 자리다.
정이천은 가정이란 본디 “정(情)이 예(禮)를 이기고 은혜(恩)가 의(義)를 빼앗기 쉬운” 곳이라 했다. 그런 곳에서 육이를 집을 다스리는 가장으로 세운다면 음유(陰柔)한 재질로는 벅차다. 그러나 자리를 바꾸어 부인의 도(道)로 보면, 유순함으로 중정에 처하는 이 모습이야말로 완전한 바름이 된다. 그래서 이천은 “안에 거하며 음식 내는 일을 주관하는(居中而主饋)” 것을 육이의 정길로 읽었다. 나서지 않음(无攸遂)은 무능이 아니라, 제 본분의 한가운데를 지키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소상전은 육이가 길한 까닭을 “순종하고 공손하기(順以巽也) 때문”이라 못 박는다. 여기서 순종은 억눌린 굴종이 아니다. 정이천의 말대로 제 자리가 낮은 줄 알아 억지 없이 스스로 낮추는 것(卑巽)이니, 자리를 아는 자만이 지닐 수 있는 능력이다. 주자 또한 육이를 “여자가 안에서 바른 자리를 차지한 자(女之正位乎內)“라 하여, 안을 지키는 이 바름을 家人卦 전체가 말한 이여정(利女貞)의 핵심으로 보았다. 앞에 나서는 힘이 아니라 안을 꽉 채우는 힘, 그것이 집과 조직을 실제로 떠받친다.
현실에서도 스포트라이트는 늘 밖에서 뛰는 사람에게 쏠린다. 내부를 지키는 자리에 있으면서 자꾸 전면에 나서고 싶어질 때, 육이는 방향을 되돌려 준다. 지금 나의 임무는 골을 넣는 것이 아니라, 뛰는 사람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안을 세팅하는 일이라고. 이 이치는 몸에도 그대로 있다. 밖으로 뻗는 팔다리가 지쳐 힘이 달릴 때, 오히려 움직임을 멈추고 아랫배 한가운데(단전)에 따뜻한 중심 하나를 걸어 두라. 과식을 피하고 호흡을 늦추어 속을 편안히 다스리면, 안이 꽉 찬 뒤에야 밖이 저절로 단단해진다. 나서지 않고 중심을 채우는 고요함 —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뼈대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无攸遂'는 이룰 바(따로 성공·경영할 바)가 없다는 말이다 — 여자는 밖에서 성공하려 들지 말라. '在中饋'는 집안 중심에서 음식을 주관한다(괴=먹일 괴), '貞吉'은 그 바른 길을 가면 길하다는 것이다. 거꾸로 읽으면 — 경영하는 바(遂)가 없어야 도리어 올바름이 된다.
남녀가 결혼하면 하나는 밖에서 벌고 하나는 안에서 살림한다 — 옛날 사냥부터 강자(힘센 자)는 나가 짐승을 잡고, 약자는 집에서 요리한다. 지금도 잘 버는 사람이 강자, 못 버는 사람이 약자다. 그러니 잘 버는 쪽이 나가고 못 버는 쪽이 살림하면 된다 — 남자가 가정주부 하는 것도 좋다. 여자가 억울할 것 하나 없다, 자연섭리가 그러하다.
소상전 '六二之吉, 順以巽也' — 음효가 중(中)에 거해 손순(巽順)하고 5효(남편)와 상응(천생연분)하니 婦之道가 맞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역대 풀이
경문과 소상전
六二,无攸遂,在中饋,貞吉。 象曰:六二之吉,順以巽也。
육이는 (스스로) 이루는 바가 없고(무유수), 가운데서 음식 내는 일(중궤)에 있으니, 바르게 함이 길하다(정길). 소상전에 말하였다. “육이의 길함은 순종하고 공손하기(순이손야)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傳:人之處家在骨肉父子之間,大率以情勝禮,以恩奪義。唯剛立之人則能不以私愛失其正理。故家人卦大要以剛為善,初三上是也。
전(傳)에 이르기를, 사람이 집에 처함에 골육과 부자의 사이에 있어서는 대개 정(情)이 예(禮)를 이기고 은혜(恩)가 의(義)를 빼앗기 십상이다. 오직 강하게 우뚝 선(剛立) 사람이어야 능히 사사로운 사랑으로 인해 그 바른 이치를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가인(家人) 괘의 대요는 강(剛)으로써 선(善)함을 삼으니 초효·삼효·상효가 이것이다.
六二以陰柔之才而居柔,不能治於家者也。故无攸遂,无所為而可也。夫以英雄之才,尚有溺情愛而不能自守者,况柔弱之人,其能勝妻子之情乎?
육이는 음유한 재주로써 유(음자리)에 거하였으니, (가장의 입장이라면) 능히 집안을 다스릴 수 없는 자이다. 그러므로 이루는 바가 없고(무유수) 하는 바가 없어야 가한 것이다. 무릇 영웅의 재주를 가진 자도 오히려 정과 사랑에 빠져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거늘, 하물며 유약한 사람이 능히 처자의 정을 이길 수 있겠는가?
如二之才,若為婦人之道則其正也。以柔順處中正,婦人之道也。故在中饋則得其正而吉也。婦人居中而主饋者也,故云中饋。
2효와 같은 재주는 만약 부인의 도(道)로 삼는다면 곧 그 바름(正)이다. 유순함으로써 중정에 대처하는 것이 부인의 도이다. 그러므로 ’가운데서 음식 내는 일에 있으면 그 바름을 얻어 길하다’고 한 것이다. 부인은 안에 거하면서 음식 내는 일(主饋)을 주관하는 자이므로 ’중궤(中饋)’라고 하였다.
傳:二以陰柔居中正,能順從而卑巽者也。故為婦人之貞吉也。
소상전 해설. 2효는 음유로써 중정에 거하여, 능히 순종하고 몸을 낮춰 공손한 자(卑巽)이다. 그러므로 부인의 정길(貞吉)이 된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
本義:六二柔順中正,女之正位乎内者也。故其象占如此。(它本无此五字)
본의에 말하였다. 육이는 유순하고 중정하니, 여자가 안에서 바른 자리를 차지한 자(女之正位乎內)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다. (어떤 판본에는 뒤의 다섯 글자[它本无此五字]가 없다.)
제가 — 진재 서씨(進齋徐氏)
進齋徐氏曰:六二以柔居中,巽順應五,婦之道也。遂,專成也。婦人无所專成,惟在主中饋而已。所謂惟酒食是議者也。貞吉者,居中得正,固守順道故吉也。
진재 서씨가 말하였다. 62는 유로써 중에 거하고 공손히 순종하여 5효에 응하니 부인의 도이다. 수(遂)는 오로지 하여 이루는 것(專成)이다. 부인은 오로지 하여 스스로 이루는 바가 없고 오직 중궤를 주관할 뿐이다. (시경에서) 이른바 “오직 술과 밥을 의논할 뿐”이라 한 것이 그것이다. 정길이라는 것은 중에 거하고 바름을 얻어, 순종하는 도를 굳게 지키므로 길한 것이다.
제가 — 한상 주씨(漢上朱氏)
漢上朱氏曰:孟母曰「婦人之禮,精五飯,羃酒漿,養舅姑,縫衣裳而已。故有閨門之脩,无境外之志」是也。
한상 주씨가 말하였다. 맹자의 어머니(孟母)가 이르기를 “부인의 예는, 다섯 가지 밥을 정성스레 짓고, 술과 물을 덮어두며, 시부모를 봉양하고, 옷을 짓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규문 안의 닦음(閨門之脩)은 있어도 문밖의 뜻(境外之志)은 없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제가 — 운봉 호씨(雲峰胡氏)
雲峰胡氏曰:婦人无遂事,從人而已。六二正應九五,從之者也,故曰无攸遂。居下卦之中,故曰在中。互坎,故有飲食之象。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부인은 자기 맘대로 이루는 일(遂事)이 없고 남을 따를 뿐이다. 62가 95에 정응하니 그를 따르는 자이다. 그러므로 ’이루는 바가 없다’고 한 것이다. 하괘의 가운데에 거하므로 ’가운데 있다(在中)’고 하였다. 호괘(互卦)가 감(坎, 2·3·4효)이므로 음식의 상이 있는 것이다.
제가 — 쌍호 호씨(雙湖胡氏)
雙湖胡氏曰:采蘩采蘋之詩,以公侯夫人奉祭祀為不失職,大夫妻共祭祀為循法度。祭祀葢饋事之大者。婦无遂事,惟在中饋可見矣。故六二貞吉,惟以在中饋言。彖辭所謂利女貞者,其六二當之歟!
쌍호 호씨가 말하였다. 시경(詩經) 채번(采蘩) 편과 채빈(采蘋) 편에서 제후의 부인이 제사를 받드는 것을 직분을 잃지 않는 것으로 여겼고, 대부의 아내가 함께 제사를 지내는 것을 법도를 따르는 것으로 여겼다. 제사(祭祀)는 대개 음식 올리는 일(饋事) 중에 가장 큰 것이다. 부인이 맘대로 이루는 일이 없음은 오직 ’가운데서 음식 내는 일(中饋)’로써 가히 볼 수 있다. 그러므로 62가 정길함은 오직 중궤에 있다는 말로써 나타낸 것이다. 단사(彖辭)에서 이른바 ’여자가 바르게 함이 이롭다(利女貞)’고 한 것은, 바로 이 62가 거기에 해당할 것이다!
제가 — 중계 장씨(中溪張氏)
中溪張氏曰:六二得正而吉者,以其能順從九五之正應而卑巽之也。
중계 장씨가 말하였다. 62가 바름을 얻어 길한 것은, 그가 능히 정응인 구오에게 순종하고 자신을 낮추어 공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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