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구삼은 하괘 리(離)의 맨 꼭대기, 밝음(明)의 극치에 선 자리다. 양(陽)이 양의 자리에 있어 지극히 강하고 밝은 자(剛居剛)이며, 위로는 상육 — 어둠의 극치이자 세상을 어둡게 하는 임금(暗君) — 과 정면으로 응(應)한다. 명이(明夷)의 괘는 본래 밝음을 감추고 어둠의 때를 견디는 처세를 말하지만, 구삼만은 다르다. 어둠 속에서 홀로 일어나 남쪽(밝은 방향)으로 나아가 사냥하듯 폭군의 우두머리를 쳐내는(明夷于南狩, 得其大首) 유일한 능동의 효, 곧 혁명의 자리다.
그러나 경문의 무게중심은 ’얻음’이 아니라 그 뒤의 한마디, 불가질정(不可疾貞)에 있다. 이겼다고 해서 급하게 바로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이천은 이렇게 풀었다 — 우두머리(元惡)는 베어냈더라도, 오래도록 물든 더러운 풍속(舊染汚俗)은 하루아침에 갈아엎을 수 없으니 반드시 점진(漸)이 있어야 한다. 급하게 뒤엎으면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도리어 불안해진다. 정이천은 『서경』주고(酒誥)편을 끌어와, 은나라의 취한 신하들조차 죽이지 말고 우선 가르치라 한 뜻을 든다. 승리 직후의 조급함이야말로 정의를 폭력으로 뒤집는 함정이다.
소상전은 “남쪽으로 사냥하는 뜻은 그 뜻을 크게 얻음이다(南狩之志, 乃大得也)“라 했다. 정이천은 이 ’뜻’을 못박는다 — 그 뜻이 오직 해로움을 제거하는 데 있을 뿐이다(志在去害). 탕왕과 무왕의 혁명이 정당했던 것은 천하를 제 것으로 삼으려는 사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마음에 사사로움이 끼면, 같은 거사도 곧 패륜하고 어지러운 반란(悖亂之事)으로 굴러떨어진다. 관건은 무엇을 이기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그리고 어떤 속도로 이기느냐에 있다.
삶에의 적용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힘을 손에 쥔 순간이 도리어 가장 위험한 때다. 낡은 리더나 굳은 관행을 마침내 걷어낸 직후, 그 밑에 남은 것까지 단번에 뒤엎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그러나 그것은 정의감을 뒤집어쓴 조급함일 때가 많다. 머리(우두머리)만 정확히 치고, 남은 자리에는 적응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몸으로 옮기면 이렇다 — 필살의 힘을 쏟아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린 바로 그 순간, 이긴 기세에 실려 연타를 퍼부으면 무도(武)는 폭력(暴)으로 변한다. 명중한 즉시 힘을 거두고 숨을 고르는 것(發勁後收), 제압은 순간이나 덕(德)은 느리게 펴는 것. 이기는 속도보다 거두는 속도를 다스릴 줄 아는 자만이, 잠깐의 승리를 오래가는 뜻으로 완성한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九三은 離(밝음)의 맨 위(極)에 있고, 6효(暗君)와 정응(正應)=천생연분인데 — 그 천생연분이 도리어 원수다. 文王(九三)과 紂(6효)가 그렇다 (…) 이제 文王(실은 그 아들 武王)이 紂를 칠 차례다. 南狩(남쪽 사냥) — 밝은 곳에서 나아가 해로운 것(괴수)을 제거하여 그 대수(大首=괴수=紂)를 얻는다(得其大首)."
"괴수를 이겼다고 빨리 바로잡으려 하지 마라(不可疾貞). 이겼을 때 빨리 해결할 경우와 천천히 할 경우가 있다 — 세력이 아직 남아 있으면 천천히, 나쁜 놈 하나만 남았으면 빨리. 여기는 천천히 해야 할 때다. 나쁜 괴수(大首) 하나만 제거하고, 오래 물든 더러운 풍속(舊染汙俗)은 빨리 바꾸면 안 된다 — 역사와 환경은 서서히 바뀐다."
"湯王·武王 같은 성인은 '많은 사람을 위해 전쟁하고 죽이는 게 아니라, 나쁜 놈 한 놈(괴수)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 만민 구원은 나와 상관없다'고 했다. 아주 겸손하다. 이것이 성인이다. 반대로 '내가 아니면 이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은 소인·역적이 하는 소리다."
원문과 주석 — 정이천 · 주자 · 운봉 호씨 · 건안 구씨 · 서계 이씨 · 융산 이씨 · 중계 장씨
효사와 소상전
九三,明夷于南狩,得其大首,不可疾貞。
구삼은 밝음이 상한 때에 남쪽으로 사냥을 가서, 그 큰 우두머리(폭군)를 얻으니, 너무 급하게 바르게 하려 해서는 안 된다.
象曰:南狩之志,乃大得也。
상전에 이르기를, 남쪽으로 사냥을 가는 뜻은, (폭군을 제거하여) 그 뜻을 크게 얻음이다.
정이천 『이천역전』빛과 어둠의 정면충돌 — 탕무(湯武)의 일
傳:九三離之上,明之極也。又處剛而進。上六坤之上,暗之極也。至明居下而為下之上,至暗在上而處窮極之地,正相敵應,將以明去暗者也。斯義也,其湯武之事乎!
전(傳)에 이르기를, 구삼은 리(離)의 꼭대기이니 밝음의 극치이다. 또 강(剛)에 처하여 나아간다. 상육은 곤(坤)의 꼭대기이니 어둠의 극치이다. 지극히 밝은 자가 아래에 거하여 아래의 윗머리가 되었고, 지극히 어두운 자가 위에 있어 궁극의 땅에 처하였으니, 정확히 서로 대적하여 응하며 장차 밝음으로써 어둠을 제거하려는 자이다. 이 의리는 아마도 성탕과 무왕의 일일 것이다.
남수(南狩)와 대수(大首)의 뜻
南在前而明方也。狩,畋而去害之事也。南狩,謂前進而除害也。當克獲其大首。大首,謂暗之魁首上六也。三與上正相應,為至明克至暗之象。
’남(南)’은 앞에 있으면서 밝은 방위이다. ’수(狩, 사냥)’는 짐승을 사냥하여 해로움을 제거하는 일이다. ’남수’란 앞으로 나아가 해로움을 제거함을 이른다. 마땅히 그 큰 우두머리를 이기고 잡을 것이다. ’대수’는 어둠의 괴수인 상육을 이른다. 삼효와 상효가 정응하여, 지극히 밝은 자가 지극히 어두운 자를 이기는 상이 된 것이다.
불가질정(不可疾貞) — 점진적 개혁
不可疾貞,謂誅其元惡,舊染汚俗未能遽革,必有其漸。革之遽則駭懼而不安。故《酒誥》云:「惟殷之廸諸臣惟工,乃湎于酒,勿庸殺之,姑惟教之。」至於既乆,尚曰「餘風未殄」,是漸漬之俗,不可以遽革也。故曰不可疾貞,正之不可急也。
‘급하게 바르게 해서는 안 된다’ 함은, 그 원악(元惡, 우두머리)은 베어 죽였더라도, 오래도록 오염된 더러운 풍속은 능히 갑자기 혁파할 수 없으니 반드시 그 점진(漸)이 있어야 함을 이른다. 혁파함을 급하게 하면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여 불안해진다. 그러므로 『서경』주고(酒誥)편에 “은나라의 신하들과 관리들이 술에 빠져 있더라도, 그들을 죽이지 말고 우선 가르치라”고 하였다. 이미 오래됨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남은 풍속이 다 없어지지 않았다”고 했으니, 이는 점차 젖어든 풍속은 갑자기 혁파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불가질정’이라 했으니, 바르게 함을 급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
本義:以剛居剛,又在明體之上,而屈於至暗之下,正與上六闇主為應,故有向明除害得其首惡之象。然不可以亟也,故有不可疾貞之戒。成湯起於夏臺,文王興於羑里,正合此爻之義。而小事亦有然者。
본의(本義): 강(剛)으로써 강한 자리에 거하고, 또 밝은 체(離)의 위에 있으면서, 지극히 어두운 자의 아래에 굽히고 있다가, 마침내 상육 어둠의 군주와 더불어 응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밝음을 향해 나아가 해로움을 제거하고 그 수악(首惡)을 얻는 상이 있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亟) 해서는 안 되므로 ’불가질정’의 경계가 있는 것이다. 성탕이 하대(夏臺, 감옥)에서 일어난 것과, 문왕이 유리(羑里)에서 일어난 것이 정확히 이 효의 뜻과 합치한다. 작은 일에도 또한 이와 같은 이치가 있다.
소상전 해설 (정이천)
傳:夫以下之明除上之暗,其志在去害而已。如商周之湯武,豈有意於利天下乎?得其大首,是能去害而大得其志矣。志苟不然,乃悖亂之事也。過則暴故戒。
무릇 아래의 밝음으로 위의 어둠을 제거함은, 그 뜻이 해로움을 제거하는 데 있을 뿐이다. 상나라와 주나라의 탕왕·무왕이 어찌 천하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뜻이 있었겠는가? 그 대수(폭군)를 얻었다는 것은, 능히 해로움을 제거하여 그 뜻을 크게 얻은 것이다. 뜻이 진실로 이와 같지 않았다면(사심이 있었다면), 곧 패륜하고 어지러운 반란일 뿐이다. 지나치면 포악해지므로 경계한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 속도의 철학
雲峰胡氏曰:初无位可去則去之宜速,二在位可救則救之宜速。若九三至明之極,與上至暗之極者為應,不可復救矣。故有向明除害得其首惡之象。然二之救難可速也,三之除害不可速也,故又有不可疾貞之戒。武王須假五年,其得此歟?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초효는 지위가 없으니 떠날 수 있다면 마땅히 속히 떠나야 했고, 이효는 지위가 있으니 구원할 수 있다면 마땅히 속히 구원해야 했다. 그러나 구삼의 지극히 밝은 극치와 상효의 지극히 어두운 극치가 응하는 상황에 이르면 다시는 구제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밝음을 향해 해를 제거하여 수악을 얻는 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효의 환난 구제는 빠를 수 있으나 삼효의 해로움 제거는 빨라서는 안 되므로, 또 ’불가질정’의 경계가 있는 것이다. 무왕이 모름지기 5년의 시간을 기다렸던 것이 이것을 얻은 것이 아니겠는가.
건안 구씨(建安丘氏) — 개과천선의 여지
建安丘氏曰:九三出而專南狩之權,以應上六柔暗之敵,為民除害,一舉而獲其首惡之大者。然九三以剛居剛,又有不可疾貞之戒。不可疾貞者,猶冀其改過遷善,則伐可不舉矣。
건안 구씨가 말하였다. 구삼이 나아가 오로지 남수(정벌)의 권한을 마음대로 하여, 상육의 유약하고 어두운 적에 응해 백성을 위해 해를 제거하니, 단번에 그 수악의 큰 자를 획득한 것이다. 그러나 구삼이 강으로서 강에 거하여 또 ’불가질정’의 경계가 있다. 불가질정이라는 것은, 오히려 그(상육)가 허물을 고치고 선으로 옮겨가기를(改過遷善) 바라는 것이니, 그리되면 정벌을 거행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서계 이씨(西溪李氏) — 시의(時義)의 대조
西溪李氏曰:武王處明夷則以不可疾為貞,箕子處明夷則以利艱為貞,各當其事也。
서계 이씨가 말하였다. 무왕이 명이에 처할 때는 ’급하지 않은 것(不可疾)’으로써 바름을 삼았고, 기자가 명이에 처할 때는 ’어려운 것(艱)’으로써 바름을 삼았으니, 각각 그 일에 합당한 것이다.
융산 이씨(隆山李氏) — 진(晉)과 명이(明夷)의 상벌
隆山李氏曰:雜卦云晉晝則明夷為夜。又曰明夷誅則晉為賞。錫馬三接,賞也。南狩得大首,誅也。
융산 이씨가 말하였다. 잡괘전에 “진(晉)은 낮이고 명이는 밤이다”라 하였고, 또 “명이는 주살함(誅)이요 진은 상 줌(賞)이다”라 하였다. 진괘의 ’석마삼접(錫馬三接)’은 상을 주는 것이요, 명이괘의 ’남수득대수(南狩得大首)’는 주살하는 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 혁명의 명분
中溪張氏曰:是狩也,必有湯武之志,然後可以行湯武之事也。
중계 장씨가 말하였다. 이 사냥(정벌)은 반드시 탕왕·무왕의 뜻(백성을 위함)을 가진 연후에야 비로소 탕왕·무왕의 일(혁명)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 — 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제가 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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