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지뢰복(地雷復)은 겨울의 끝에서 한 양(陽)이 다시 돋는 회복의 괘다. 그러나 그 마지막 자리인 상육은 회복의 첫 양인 초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끝까지 가버려 돌아올 기미가 없으니, 이것이 ‘미복(迷復)’ — 미혹되어 돌아오지 못함이다. 앞선 초구의 불원복(不遠復)에서 시작해 육오의 돈복(敦復)까지 이어진 회복의 여정이,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서 끝난다. 정이천은 말한다. “음유(陰柔)로서 복의 끝에 거하여, 끝내 미혹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자이다.”1
효사는 그 결과를 냉엄하게 짚는다. ’재성(災眚)’이 안팎에서 닥친다. 정이천의 구분에 따르면 ’재(災)’는 밖에서 오는 하늘의 재앙이고, ’성(眚)’은 스스로 지은 자기의 허물이다. 밖에서는 재난이 떨어지고 안에서는 실수가 겹치니, 자연과 사람 양쪽에서 배신을 받는 형국이다. 여기서 억지로 힘을 써 군대를 일으키면 끝내 크게 패하고(用行師終有大敗), 그 화가 나라에 미치면 임금까지 흉하다. ’10년이 되도록 정벌하지 못한다’는 것은, 주자의 풀이대로 물리적 세월이 아니라 ‘끝(終)’ — 더 이상 할 말이 없는(无說) 가망 없는 상태를 뜻한다.2
소상전은 그 근본 원인을 한마디로 짚는다. ‘반군도(反君道)’ — 군주의 도, 곧 돌아옴의 순리를 거스르기 때문이다. 남송의 학자 장식(張栻)은 이 효를 두고 이렇게 통찰했다. 집안을 망치고 나라를 엎는 거대한 비극도 그 근원은 ’한 생각의 은미함(一念之微)’에서 일어나는데, 그 작은 어긋남을 제어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이번 한 번만’이라는 미세한 미혹을 다스리지 못하면, 인욕이 방자해지고 천리가 멸하는 지경에 이른다.
삶에의 적용
산에서 길을 잃은 짐승은 패닉에 빠져 이리저리 내달린다. 뛸수록 더 깊은 늪으로 빠진다. 길을 잃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계속 걷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것이다. 상육의 경고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틀렸으면 틀렸다고 인정하고 맞으면 맞다고 하면 될 일을, 자리가 높다는 이유로 고집을 놓지 못하는 데서 파국이 온다. 몸도 마찬가지다. 병은 밖의 조건(風寒濕)에서도 오고 안의 마음(七情)에서도 오지만, 골똘히 신경 써서 자극을 스스로 키우면 안이 먼저 무너진다. 수양이란 거대한 결단이 아니라, 어긋남을 알아챈 그 순간 한 걸음 더 내딛지 않고 멈춰 서는 힘이다. 귀소본능을 잃은 개체는 야생에서 죽는다. 사람에게 그 귀소본능은 양심이며 초심이니, 그것을 붙잡아 돌아설 때 상육의 겨울은 비로소 봄으로 향한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상육은 미복(迷復)이라 — 아득할 미, 돌아올 복, 복괘의 마지막 음효다. 초구(初九)하고 너무 멀지, 마지막까지 가버렸지, 중도도 안 되지 — 양심을 버려놓고 사건을 망쳐놓고 회복할 기미가 없어. 그러니 흉하다."
"유재생(有災眚)이야 — 재(災)는 자연으로부터 오는 재앙, 생(眚)은 인간의 실수로 인해 죄를 짓는 허물이다. 자연으로부터 인간으로부터 전부 배신 받았다, 지가 잘못했으니까. 두 개가 다 억울한 거다."
"지우십년(至于十年)이 불극정(不克征)하리라 — 십 년에 이르도록 능히 못 치고 성공도 못하고 끝나고 말 거다. 자리가 위엔데 고집을 부리고 자꾸 안 놓지 —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고집부리고 안 망한 놈은 이 세상에 없어."
"세상은 변하는데 지 멋대로 세상을 운영하려고 하면 안 돼 — 세상 운영되는 대로 따라서 운영을 해야지. 지 하나가 세상을 창조하려 하면 틀렸잖아, 그래서 망하게 돼있는 거다. 변하는 대로 따라 변하면서 통치를 해야 돼."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제가(諸家)의 풀이
효사와 소상전
上六, 迷復, 凶, 有災眚. 用行師, 終有大敗, 以其國君凶, 至于十年不克征.
상육은 미혹되어 돌아오니 흉하고, 재앙(災)과 허물(眚)이 있다. 군대를 쓰면 마침내 크게 패할 것이며, 그 나라 임금에게까지 흉하니, 10년이 이르도록 정벌하지 못한다.
象曰, 迷復之凶, 反君道也.
상전에 이르길, 미복의 흉함은 군주의 도에 반대되기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以陰柔居復之終, 終迷不復者也. 迷而不復, 其凶可知. 有災眚. 災, 天災, 自外來, 眚, 己過, 由自作.
음유로서 복의 끝에 거하여 끝내 미혹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자이다. 미혹되어 돌아오지 못하니 그 흉함을 알 만하다. ’유재성’이라 했으니, ’재(災)’는 하늘의 재앙으로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성(眚)’은 자기의 허물이니 스스로 지은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既迷不復, 善在己則動皆過失, 災禍亦自外而至, 蓋所招也. 迷道不復, 无施而可用.
이미 미혹되어 선으로 돌아오지 못하니 자기에게 있어서는 움직이는 것마다 다 과실이 되고, 재앙과 화 또한 밖으로부터 이르니 대개 자기가 불러들인 것이다. 도에 미혹되어 돌아오지 못하니 베풀어 쓸 데가 없다.
復則合道. 既迷於復, 與道相反也, 其凶可知. 非止人君, 凡人迷於復者, 皆反道而凶也.
회복함은 도에 합치되는 것이다. 이미 회복함에 미혹되었으니 도와 서로 반대되는 것이라 그 흉함을 알 수 있다. 비단 임금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릇 사람이 회복함에 미혹된 자는 모두 도에 반대되어 흉하다.
주자『주역본의』
以陰柔居復終, 終迷不復之象, 凶之道也. 故其占如此. 以猶及也.
음유로서 복의 끝에 거하니 끝내 미혹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상이요 흉한 도이다. 그러므로 그 점이 이와 같다. (’이(以)’는 ’미치다(及)’와 같다.)
過而能改, 則亦可以進善. 迷而不復, 自是无說, 所以无往而不凶. 凡言三年, 猶是有箇期限, 到十年, 便是无說了.
허물이 있어도 능히 고치면 또한 선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미혹되어 돌아오지 못하면 스스로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그러므로 가는 곳마다 흉하지 않음이 없다. 무릇 ’3년’이라 말하는 것은 그래도 기한이 있는 것이지만, ’10년’에 이르면 곧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제가(諸家)
진재 서씨(서기)
進齋徐氏曰, 上六位高而无下仁之美, 剛遠而失遷善之機, 厚極而有難開之蔽, 柔終而无改過之勇. 是昏迷而不知復者也.
상육은 지위는 높으나 어진 이에게 낮추는 아름다움이 없고, 강(초구)과는 멀어서 개과천선할 기회를 잃었으며, 두터움이 극에 달해 열기 어려운 가려짐이 있고, 유(柔)가 끝까지 가서 허물을 고칠 용기가 없다. 이것이 혼미하여 돌아올 줄 모르는 자이다.
운봉 호씨(호병문)
雲峯胡氏曰, 坤體而居上體之上, 先迷者也. 十年不克征, 亦七日來復之反. 乾无十, 坤无一. 陰數極於六, 而七則又為乾之始, 陽數極於九, 而十則自為坤之終. 故凡言十年者, 坤終之象也.
곤(坤)의 체이면서 상체(외괘)의 위에 거하니 먼저 미혹된 자이다. ’10년 불극정’은 괘사의 ’7일래복’과 반대된다. 건(양)에는 10이 없고 곤(음)에는 1이 없다. 음수는 6에서 극에 달하니 7은 건의 시작이 되고, 양수는 9에서 극에 달하니 10은 스스로 곤의 끝이 된다. 그러므로 무릇 ’10년’이라 말하는 것은 곤이 끝까지 간 상이다.
남헌 장씨(장식)
南軒張氏曰, 易之爻辭鮮有如是之詳, 其凶鮮有如是之極者, 而獨於復之上六言之. 蓋自古亡家覆國, 反道敗德, 无所不在. 其源起於一念之微, 不能制過之爾.
주역의 효사 중에 이처럼 상세한 것이 드물고 그 흉함이 이처럼 극단적인 것이 드문데, 유독 복괘 상육에서 이를 말했다. 대개 예로부터 집안을 망치고 나라를 엎으며 도를 반하고 덕을 무너뜨리는 일이 없는 곳이 없으나, 그 근원은 ’한 생각의 은미함(一念之微)’에서 일어나는데 그 허물을 제어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건안 구씨(구부국)
建安丘氏曰, 上六則物欲沈滯, 本心喪失, 下愚不移者也. 尚何復之可言哉. 民斯為下矣.
상육은 물욕에 깊이 빠지고 막혀서 본심을 상실한, ’하우불이(下愚不移 — 가장 어리석어 바뀌지 않는 자)’이다. 오히려 어찌 회복함을 말할 수 있겠는가. 백성 중 가장 하등이 된다.
쌍봉 요씨(요로)
雙峯饒氏曰, 復卦辭專以氣數言, 爻辭專以人事言. 若以人事言, 則須不遠復與休復方吉, 敦復方无悔, 獨復亦可以免凶咎. 若頻復則雖厲而亦可以无咎. 迷復則必至於凶而有災眚矣. 此皆人事所致, 君子不可不慎也.
복괘의 괘사는 오로지 기수(氣數)로 말했고 효사는 오로지 인사(人事)로 말했다. 인사로 말하자면 불원복과 휴복이라야 길하고, 돈복이라야 후회가 없으며, 독복이라야 흉과 허물을 면할 수 있다. 빈복이라면 비록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미복이라면 반드시 흉함에 이르러 재앙과 허물이 있게 된다. 이것은 다 사람의 일이 초래한 바이니, 군자가 삼가지 않을 수 없다.
습정 유씨(유지)
習靜劉氏曰, 三頻復雖危, 猶知復也. 上迷復反道, 則不知復矣.
삼효의 빈복은 비록 위태로우나 오히려 돌아올 줄을 아는 자이다. 그러나 상효의 미복 반도(反道)는 돌아올 줄을 모르는 자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