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지뢰복(地雷復)은 다섯 음(陰) 아래에서 한 양(陽)이 다시 돋아나는 괘다. 그 첫 자리인 초구는 회복의 가장 앞에 선다. 잃었던 것이 아직 멀리 가지 않았을 때 되돌아오니, 후회할 지경에 이르지 않아 크게 길하다. 정이천은 말한다. “잃은 뒤에야 회복이 있으니, 잃지 않았다면 어찌 회복이 있겠는가.”1 사람은 누구나 어긋난다. 문제는 어긋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얼마나 빨리 돌아오느냐다.
효사의 핵심은 속도에 있다. ’무지회(无祗悔)’는 후회에 ’이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인은 실수를 하고도 괜찮다며 계속 나아가다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반면 군자는 어긋난 마음이 싹트는 그 찰나를 알아채고 곧바로 되돌린다. 공자가 가장 아끼던 제자 안회(顔回)가 그 모범이다. “착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알지 못한 적이 없고, 알면 두 번 행한 적이 없다.”2 허물이 겉으로 드러나기 전에 마음속에서 고쳤으니, 남은 그가 실수하지 않는 줄 알지만 실은 남보다 먼저, 남보다 빨리 고쳤을 뿐이다.
그 되돌림의 힘은 밝음과 굳셈에서 나온다(明而剛). 밝기에 어긋남을 즉시 알아채고, 굳세기에 곧바로 고친다. 앎과 고침 사이에 틈을 두지 않는 것, 그것이 초구가 가리키는 마음의 훈련이다.
삶에의 적용
수양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나쁜 마음을 먹으려 할 때, 게을러지려 할 때, 마음 한구석에서 올라오는 그 미세한 불편함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소상전은 이 효를 두고 ’몸을 닦는 것(以脩身)’이라 했다. 안 되는 일을 물리적으로 억누르려 하지 말고, 마음속으로 끌고 들어와 정리하는 것이 수신이다. 고속도로에서 길을 잘못 들었으면 다음 나들목에서 바로 빠져나오면 된다. 끝까지 달려가 울지 않아도 된다. 몸이 보내는 거부 반응, “뭔가 아닌 것 같다”는 그 느낌은 머리의 변명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그 신호를 붙잡아 유턴하는 훈련이 곧 초구의 수련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초구는 처음 읽은 양(陽)이니 불원복(不遠復)이라 — 지금은 돌아왔어도 눈에 안 보여 밑에 숨어 있다. 양심이 올라오다 가슴 밑에 있는데 입으로 표현이 안 돼. 멀지 않아서 회복할 것이다."
"안자(顔子) 무형현지과(無形顯之過)를 — 얼굴에 나타나는 허물이 없는 것을 말함이다. 한 번 마음속으로 '이건 아니다' 하면 또 실수를 안 해. 그걸 불이과(不貳過)라 해, 두 번 실수 안 한다. 만에 하나라도 착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일찍이 알지 못하지 아니하고, 이미 알았다면 급하게 고치지 아니함이 없는 고로 후회에 이르지 아니하니, 멀지 않아 돌아온다."
"상언(象言)은 공자가 쓴 것이고 — 불원지복(不遠之復)은 멀지 아니해서 회복한다는 말은 이수신야(以脩身也)라, 이게 내 몸을 다스리는(닦는) 말이다. 안 되는 건 물리적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마음속으로 끌고 가서 정리를 해봐라."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제가(諸家)의 풀이
효사와 소상전
初九, 不遠復, 无祗悔, 元吉.
초구는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니, 후회하는 데 이르지 않아 크게 길하다.
象曰, 不遠之復, 以脩身也.
상전에 이르길,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옴은 이로써 몸을 닦기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復者, 陽反來復也. 陽君子之道, 故復為反善之義. 初剛陽來復, 處卦之初, 復之最先者也, 是不遠而復也.
복(復)은 양이 돌이켜 와서 회복하는 것이다. 양은 군자의 도이므로 복은 ’선으로 돌아가는 뜻’이 된다. 초구는 강양으로 와서 회복하는데 괘의 초기에 처해 있으니 회복함이 가장 먼저인 자이다. 이것이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는 것이다.
失而後有復, 不失則何復之有. 唯失之不遠而復, 則不至於悔, 大善而吉也.
잃은 뒤에야 회복함이 있으니 잃지 않았다면 어찌 회복함이 있겠는가. 오직 잃어버린 것이 멀어지기 전에 회복한다면 후회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으니 크게 선하고 길한 것이다.
顔子无形顯之過, 夫子謂其庶幾, 乃无祗悔也. 一有不善未嘗不知, 既知未嘗不遽改, 故不至於悔, 乃不遠復也.
안자는 형체로 드러난 허물이 없었으므로 공자께서 ’거의 도에 가깝다’고 하셨으니, 이것이 ’후회함에 이르지 않는 것’이다. 한 번 불선함이 있으면 알지 못한 적이 없었고, 이미 알았으면 대번에 고치지 않은 적이 없었으므로 후회함에 이르지 않았으니, 이것이 ’불원복’이다.
不遠而復者, 君子所以脩其身之道也. 學問之道无他也, 唯其知不善則速改以從善而已.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온다는 것은 군자가 그 몸을 닦는 방도이다.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없다. 오직 그 불선함을 알면 속히 고쳐서 선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주자『주역본의』
一陽復生於下, 復之主也. 祗, 抵也. 又居事初, 失之未遠, 能復於善, 不抵於悔, 大善而吉之道也. 故其象占如此.
한 양이 아래에서 다시 생겨나니 복괘의 주인이다. ’지(祗)’는 이른다는 뜻이다. 또한 일의 초기에 거하여 잃은 것이 아직 멀지 않았을 때 능히 선으로 돌아와 후회함에 이르지 않으니, 크게 선하고 길한 도이다. 그러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제가(諸家)
건안 구씨(구부국)
建安丘氏曰, 初以一陽為五陰之主, 居復之最先. 不遠而復, 故不至於悔.
초효는 한 양으로서 다섯 음의 주인이 되어 복의 가장 먼저에 거한다. 멀리 가지 않고 돌아왔으므로 후회하는 데 이르지 않는다.
서계 이씨(이석계)
西溪李氏曰, 一陽在内, 天地之心, 性善之端也. 故六爻以復善為義.
한 양이 안에 있는 것은 천지의 마음이요 성선(性善)의 단서이다. 그러므로 여섯 효가 ’선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으로 삼았다.
남헌 장씨(장식)
南軒張氏曰, 復之初九, 震體也, 微動之時也. 當是時而能復焉, 則去无妄不遠矣.
복괘 초구는 진(震)체이니 미세하게 움직이는 때이다. 이때를 당하여 능히 회복한다면 무망(진실)과의 거리가 멀지 않다.
운봉 호씨(호병문)
雲峯胡氏曰, 復善貴早, 故易以不極其往者言之. 唯失之未遠而即復, 所以不祗於悔元吉.
선으로 돌아감은 일찍 함을 귀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역에서 ’그 감을 끝까지 하지 않은 것’으로 말한 것이다. 오직 잃은 것이 멀지 않을 때 즉시 돌아오기 때문에 후회에 이르지 않아 크게 길한 것이다.
쌍봉 요씨
雙峯饒氏曰, 人之一心, 善端緜緜, 本自相續. 念慮之間, 雖或小有所差, 而其慊然不自安之意, 已萌於中. 是即天地生物之心之所呈露, 而孟子所謂怵惕惻隱之心者也.
사람의 한마음은 선한 단서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본래 스스로 서로 계속된다. 생각하는 사이에 비록 조금 어긋나는 바가 있더라도, 그 흡족하지 않고 스스로 편안하지 않은 뜻이 이미 마음속에서 싹튼다. 이것이 곧 천지의 만물을 낳는 마음이 드러난 것이며, 맹자가 이른바 ’깜짝 놀라 측은해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善用力者, 誠能因是心之萌而速反之, 使不厎於悔焉, 則人欲去而天理還矣. 此不遠之復以脩身也.
힘을 잘 쓰는 자는 진실로 이 마음이 싹트는 것으로 인하여 속히 되돌려 후회하는 데 이르지 않게 하니, 그러면 인욕이 제거되고 천리가 돌아온다. 이것이 ’멀리 가지 않고 돌아와 몸을 닦는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