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地剝 · 64괘 사전

상구(上九) — 碩果不食

上九,碩果不食。君子得輿,小人剝廬。
아직 이루지 못하거나 부족상효, 양강이 극에 거함 (한계/궁지)윗사람을 보좌하거나 아래를 이끄는 관계진출/전진

깎임(剝)이 끝까지 진행되어, 이제 다섯 음이 세상을 다 갉아먹고 맨 꼭대기에 단 하나의 양(陽)만 남았습니다. 이 마지막 양이 곧 상구입니다. 나무 끝에 덩그러니 매달린 크고 탐스러운 과일 하나, 그것이 석과(碩果)입니다. 왜 이 과일은 먹히지 않는가.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 새 생명의 씨앗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마저 먹어 버리면 내년 봄은 없습니다.

정이천은 여기서 “양은 다 없어질 수 있는 이치가 없다(陽无可盡之理)“고 말합니다. 위에서 사라지면 아래에서 다시 생겨나, 그 사이에 쉴 틈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순음(純陰)이 되는 10월을 오히려 양월(陽月)이라 부릅니다. 겉으로는 양이 하나도 안 보여도, 그것이 없다고 의심할까 두려워 성인이 굳이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입니다. 어둠이 가장 깊은 자리가 곧 새벽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같은 끝자리에서도 갈림이 생깁니다. 마지막 씨앗을 지키는 군자는 백성의 마음을 얻어 수레에 실려 갑니다(君子得輿). 어지러움이 극에 이르면 사람들은 스스로 다스려지기를 바라고, 그 바람이 군자를 떠받치는 힘이 됩니다. 반대로 끝까지 탐욕을 놓지 못하는 소인은 제가 머물 집의 지붕(廬)까지 뜯어내다가 마침내 몸 둘 곳을 잃습니다(小人剝廬). 같은 한계, 같은 궁지 앞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리는가가 그 사람의 끝을 가릅니다.

삶에 옮겨 놓으면 이렇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가는 때일수록, 손에 남은 마지막 하나가 ’먹어 치울 것’인지 ’심어야 할 씨앗’인지를 분간해야 합니다. 마지막 자산, 마지막 양심, 마지막 기술 — 당장 허기를 면하려고 이것까지 소진하면 다시 일어설 뿌리가 사라집니다. 몸도 그러합니다. 아무리 지치고 무너진 날에도 새벽의 걸음 하나, 호흡 한 자락, 자세를 바로잡는 한 순간은 남겨 두어야 합니다. 그 한 줌이 곧 나를 다시 세우는 종자입니다. 굶어 죽어도 종자는 베고 죽는다는 농부의 마음이 여기 있습니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큰 과일은 절대 먹히지 않는다(碩果不食) — 생명의 과일이라 죽으면 안 되니, 촌의 까치밥·산삼처럼 표본으로 남겨 새가 똥에 씨를 날라 다시 난다. 양은 곤괘 속에 안 보일 뿐 땅속으로 들어가 다시 큰다."

"군자(上九 양)는 아래 다섯 음을 제 수레로 삼아 실려 가고(君子得輿) — 소인은 제 집(여막)을 깎아 망친다(小人剝廬). 박락이 극에 이르러도 없어지는 게 아니라, 죽어도 있는 것으로 알아라(生生之謂易)."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제가

효사(爻辭)

上九,碩果不食。君子得輿,小人剝廬。

상구는 큰 과실은 먹지 않음이니, 군자는 수레를 얻고 소인은 오두막(지붕)을 깎아버린다.

상전(象傳)

象曰:君子得輿,民所載也。小人剝廬,終不可用也。

상전에 이르길, ’군자가 수레를 얻는다’는 것은 백성이 태워 주는 것이요, ’소인이 오두막을 깎는다’는 것은 마침내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諸陽消剝已盡,獨有上九一爻尚存,如碩大之果不見食,将見復生之理。

모든 양들이 깎이고 사라짐이 이미 다하였는데, 유독 상구 한 효만이 아직 보존되어 있으니, 마치 크디큰 과실이 먹히지 않고 남아서 장차 다시 생겨나는 이치를 보는 것과 같다.

上九亦變則純隂矣。然陽无可盡之理,變於上則生於下,无間可容息也。聖人發明此理,以見陽與君子之道不可亡也。

상구마저 변한다면 순음(곤괘)이 된다. 그러나 양은 다 없어질 수 있는 이치가 없으니, 위에서 변하면 아래에서 생겨나 그 사이에 쉼을 용납할 틈이 없다. 성인께서 이 이치를 밝혀 양과 군자의 도가 망할 수 없음을 보이신 것이다.

或曰:剝盡則為純坤,豈復有陽乎?曰:以卦配月,則坤當十月。以氣消息言,則陽剝為坤,陽來為復,陽未嘗盡也。剝盡於上,則復生於下矣。故十月謂之陽月,恐疑其无陽也。

혹자가 “박이 다하면 순수한 곤이 되는데 어찌 다시 양이 있습니까” 물으니, 답하되 괘를 달에 배속하면 곤은 10월이요, 기운의 소식으로 말하면 양이 깎여 곤이 되고 양이 다시 오면 복이 되니 양은 일찍이 다한 적이 없다. 위에서 다 깎이면 아래에서 다시 생겨난다. 그러므로 10월을 양월이라 하니, 그 양이 없음을 의심할까 두려워해서이다.

隂道盛極之時,其亂可知。亂極則自當思治,故衆心願載於君子,君子得輿也。小人剥廬。若小人則當剥之極,剝其廬矣,无所容其身也。

음의 도가 극에 달한 때이니 그 어지러움을 알 만하다. 어지러움이 극에 달하면 스스로 다스려짐을 생각하게 되므로 뭇 마음이 군자를 태우기를 원하니 군자가 수레를 얻는다. ’소인박려’란 소인이 박의 극단에 처해 제 오두막을 깎아버려 몸 둘 곳이 없게 됨이다.

주자『주역본의』·제가

或曰:隂陽之消,必待盡而後復生於下,此在上便有復生之義,何也?夬之上六,何以言終有凶?曰:上九居剝之極,止有一陽。陽无可盡之理,故明其有復生之義,見君子之道不可亡也。夬者,陽消隂。隂,小人之道也。故但言其消亡耳。

혹자가 “음양의 사라짐은 반드시 다한 뒤에야 아래에서 다시 생기는데 여기서는 위에 있으면서 문득 다시 살아나는 뜻이 있음은 어째서이며, 택천쾌의 상육은 어찌하여 마침내 흉하다 하는가” 물으니, 답하되 상구는 박의 극에 거해 겨우 하나의 양만 남았으나 양은 다할 수 없는 이치가 있어 그 다시 살아나는 뜻을 밝혀 군자의 도가 망할 수 없음을 보였고, 쾌는 양이 음을 없애는 것이라 음은 소인의 도이므로 단지 그 소멸함만을 말했을 뿐이다.

주공은 양을 붙들고 음을 억제하여(扶陽抑陰) 생명의 도를 돌이켜 회복시켰으니, 박괘의 끝에 양 하나를 씨앗으로 남긴 것이 곧 그 뜻이다. 박락이 극에 이르러도 양이 속으로 들어가 다시 사니, 삶이 죽음을 낳고 죽음이 삶을 낳는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이다.

이 효가 動하면重地坤(2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