火雷噬嗑 · 64괘 사전

육삼(六三) — 噬腊肉, 遇毒

六三, 噬腊肉, 遇毒, 小吝, 无咎.
묵은 장애물을 씹어 없애 바로잡으려는 의지 (형을 집행함)삼효, 음유가 양위에 거함 (능력이 자리에 미치지 못함)상효와 정응 관계위기/경계

딱딱한 고기를 씹다

육이가 부드러운 살을 어렵지 않게 씹었다면, 육삼은 사정이 다르다. 이번에 씹어야 할 것은 석육(腊肉), 곧 뼈째 바짝 말린 육포처럼 굳고 질긴 고기다. 게다가 그 고기에는 독이 배어 있다. 오래 묵어 맛이 변질된 것을 씹다가 도리어 탈이 나는 형국이다. 서합괘에서 씹는다는 것은 사이를 가로막은 장애물을 제거해 바로잡는 일이니, 육삼이 마주한 것은 오래 방치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린 난제, 손대기 고약한 적폐다.

문제는 씹는 이의 이빨이 약하다는 데 있다. 육삼은 음유(陰柔)한 자질로 강하게 결단해야 하는 양의 자리에 앉아, 중(中)도 정(正)도 얻지 못했다. 정이천은 이를 두고 스스로 처신함이 마땅함을 얻지 못한 채 남에게 형벌을 가하는 자리로 보았다. 그러니 상대는 복종하지 않고 원망하며 되레 덤벼든다. 약한 이로 굳은 뼈를 씹으니 이가 시리고, 씹다 보니 상한 맛이 올라와 배탈이 나는 것, 그것이 우독(遇毒)이다. 소상전이 ’독을 만남은 위치가 마땅치 않기 때문(位不當)’이라 한 까닭이다.

그러나 효사는 ’조금 부끄러우나 허물은 없다(小吝, 无咎)’로 맺는다. 성재 양씨의 말처럼 이빨은 약한데 단단한 것을 씹으니 탈이 나기는 하나, 서합의 때를 만난 이상 그 장애물을 씹어 없애는 일 자체가 정의이기 때문이다. 주자 역시 석육은 다스리기 어려울 뿐 마땅히 다스려야 할 것이니, 다스림에 조금 부끄러움이 있더라도 끝내 허물은 없다고 하였다. 서툴러 욕을 먹고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도, 뜻을 관철하여 끝을 보면 도리에 부합하므로 무구가 된다.

삶에 들이는 자리

오래 미룬 문제를 손대려 할 때 “깔끔하게 해결되리라”는 기대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묵은 불화, 고질적인 병통은 반드시 반발을 부르고, 건드리는 나도 상처를 입는다. 육삼의 자세는 그 쓴맛을 알면서도 뱉지 않고 삼키는 것이다. 몸을 단련해온 사람은 안다. 굳은 매듭은 단번에 풀리지 않으며, 힘이 부친다고 손을 놓으면 매듭은 더 단단해질 뿐이다. 저항을 견디는 턱 근육과 비난을 소화하는 위장은 편한 자리에서 길러지지 않는다. 자격이 넉넉지 않아 부끄러울 수 있으나, “부족하지만 이 일은 해야 한다”며 밀고 나가는 뚝심, 쓴맛을 삼키고 끝을 보는 그 자리에 허물없음이 놓인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육삼이 약하면서 양자리(부중정)라 독을 만났으니(噬腊肉遇毒) — 형벌을 쓰는데 사람들이 복종 안 하고 도리어 원망·침범한다(用刑人不服). 그러나 세합하는 때를 만났으니(時當噬嗑) 끝을 보면 상처가 있어도 허물이 없다."

원문과 주석 — 경문·정이천·주자·제가

효사와 소상전

六三, 噬腊肉, 遇毒, 小吝, 无咎.

육삼은 말린 고기(석육)를 씹다가 독을 만나니, 조금 부끄러우나 허물은 없다.

象曰: 遇毒, 位不當也.

소상전에 이르길, ’독을 만난다’는 것은 위치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三居下之上, 用刑者也. 六居三, 處不當位. 自處不得其當, 而刑於人, 則人不服而怨懟悖犯之, 如噬齧腊.

삼효는 하괘의 위에 거하니 형벌을 쓰는 자이다. 음(六)이 삼(三)의 자리에 거하니 그 지위가 마땅치 않다. 스스로 처신함이 그 마땅함을 얻지 못하고서 남에게 형벌을 가하면, 남들이 복종하지 않고 원망하며 어그러져 범하니, 마치 말린 고기를 씹는 것과 같다.

乾腊, 堅韌之物. 而遇毒, 惡之味, 反傷於口也. 用刑而人不服, 反致怨傷, 是可鄙吝也.

마른 고기는 견고하고 질긴 물건이다. 그런데 독을 만났으니 나쁜 맛이라, 도리어 입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형벌을 쓰는데 남들이 복종하지 않고 도리어 원망과 상해를 입게 되니, 이는 비루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然當噬嗑之時, 大要噬間而嗑之. 雖其身處位不當, 而强梗難服至於遇毒, 然用刑非為不當也. 故雖可吝而亦小, 噬而嗑之, 非有咎也.

그러나 서합의 때를 당하여 중요한 것은 간격을 씹어서 합치는 것이다. 비록 그 자신이 처한 지위는 부당하고 상대가 강경하여 복종하기 어려워 독을 만나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형벌을 쓴 것 자체가 부당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부끄러울 만하나 또한 작으니, 씹어서 합친다면 허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자『주역본의』

腊肉, 謂獸腊全體骨而為之者, 堅韌之物也. 陰柔不中正, 治人而人不服, 為噬腊遇毒之象. 占雖小吝, 然時當噬嗑, 於義為无咎也.

’석육’은 짐승을 전체 뼈째로 말려서 만든 것을 이르니, 견고하고 질긴 물건이다. 육삼은 음유하고 중정하지 못하여, 사람을 다스리되 사람이 복종하지 않으니 ’서석우독’의 상이 된다. 점이 비록 조금 부끄러우나, 때가 서합을 당하였으니 의리상 허물은 없다.

朱子曰: 六三噬腊肉遇毒, 是所噬者堅韌難合. 三以陰柔不中正而遇此, 所以遇毒而小吝. 然此亦是合當治者, 但難治耳. 治之雖小吝, 終无咎也.

주자가 말하기를: “육삼의 ’서석육우독’은 씹는 대상이 견고하고 질겨서 합치기 어려운 것이다. 삼효가 음유하고 부중정함으로써 이것을 만났기 때문에 독을 만나 조금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합당히 다스려야 할 것인데, 다만 다스리기 어려울 뿐이다. 다스림에 비록 조금 부끄러움이 있으나 마침내 허물은 없다.”

제가(諸家)

절초 제씨(節初齊氏, 제이겸)

節初齊氏曰: 周禮腊人, 掌田獸之脯. 注: 薄物為脯, 小物全乾為腊.

절초 제씨가 말하기를: “『주례』의 석인(腊人)은 사냥한 짐승의 포를 관장한다. 주석에 이르길 ’얇은 것은 포(脯)가 되고, 작은 동물 전체를 말린 것은 석(腊)이 된다’고 했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호병문)

雲峰胡氏曰: 肉因六柔取象, 腊因三剛取象. 三至五互坎, 坎有毒象. 師有坎, 故釋彖亦曰毒.

운봉 호씨가 말하기를: “고기(肉)는 육(음효)의 부드러움으로 상을 취했고, 석(腊, 마른 것)은 삼(양의 자리)의 강함으로 상을 취했다. 삼효에서 오효까지 호괘(互卦)가 감(坎, 물·험난함)이니 감괘에는 ’독’의 상이 있다. 지수사(師)괘에도 감이 있으므로 단전 풀이에서 또한 ’독’이라 했다.”

六二柔居柔, 故所噬象膚之柔; 六三柔居剛, 故所噬象腊肉. 柔中有剛, 三比之二難矣. 然三遇毒, 二亦滅鼻, 甚言刑之不可輕用也. 二三皆无咎而三小吝者, 中正不中正之分也.

“육이는 유(柔)가 유의 자리에 거하므로 씹는 것이 피부처럼 부드러운 상이고, 육삼은 유가 강(剛)의 자리에 거하므로 씹는 것이 석육의 상이다. 부드러운 가운데 강함이 있으니 삼효는 이효에 비해 어렵다. 그러나 삼효는 독을 만나고 이효 또한 코가 묻히니, 형벌을 가벼이 써서는 안 됨을 심히 말한 것이다. 이효와 삼효가 모두 ’무구’인데 삼효만 ’소린’인 것은, 중정인가 중정이 아닌가의 구분 때문이다.”

성재 양씨(誠齋楊氏, 양만리)

誠齋楊氏曰: 六三以柔弱之才, 居剛決之位. 比弱於齒, 而噬夫堅者也, 能不遇毒乎? 故曰位不當也.

성재 양씨가 말하기를: “육삼은 유약한 재질로써 강하게 결단해야 하는 자리에 거했다. 이에 비유하면 ’이빨은 약한데 저 단단한 것을 씹는 것’이니, 능히 독을 만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위부당’이라 한 것이다.”

이 효가 動하면重火離(30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