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수레는 짐을 많이 실어야 제 값을 한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 하나는 튼튼한 차축과 바퀴, 곧 굴러갈 힘이다. 구이는 건(乾)의 몸이니 힘은 넉넉하다. 다른 하나는 짐을 받아들일 빈 공간이다. 수레가 이미 가득 차 있으면 아무것도 더 실을 수 없다. 구이는 양강(陽剛)한 재질이면서도 음의 자리(2위)에 거하니, 속을 비울 줄 안다. 강한 능력과 겸손한 태도가 한 몸에 갖춰져, 천하의 짐을 싣고 먼 길을 갈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었다.
그런데 점사는 겨우 무구(无咎)에 그친다. 길하다는 말이 없다. 정이천은 그 까닭을 이렇게 짚는다. 큰 신하가 천하의 무거운 짐을 맡아 잘 나르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직분이지, 따로 상 받을 일이 아니다. 사고를 내지 않으면 본전이다. 무거운 짐을 그 가운데 쌓고도 무너지지 않는 것(積中不敗), 그것이 이 자리가 바라는 전부다. 소상전이 “가운데 쌓아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 말은,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끝까지 부러지지 않고 가는 견고함을 가리킨다.
핵심은 힘을 다 쓰지 않는 데 있다. 열 근을 들 수 있는 사람이 열 근을 다 들면 남은 기운이 없어 꼼짝도 못 한다. 절반만 실으면 여유가 있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능력의 크기가 아니라 여백의 크기가 그 사람을 오래 가게 한다.
큰 책임을 맡았다면 “잘하면 칭찬받겠지” 하는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 먼저다. 몸에도 같은 이치가 있다. 등은 펴서 강하게 지지하고 가슴은 비워 부드럽게 하며(含胸拔背), 무거운 힘이 들어올 때 내 중심으로 받아 땅으로 흘리면 무너지지 않는다. 늘 조금 부족하게 채워 두는 것, 그 여백이 곧 오래 감당하는 힘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열 근 들 수 있는 사람이 열 근을 다 들면 꼼짝도 못 한다 — 남은 기운이 없으니까. 다섯 근만 들면 여유가 있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거북이하고 학은 항상 밥통을 3분의 1 비워 둔다, 그게 수명을 제일 기르는 거다."
"큰 신하가 천하의 무거운 짐을 맡으면 자기 소임을 다할 뿐이지 자랑할 게 어디 있나 — 그래서 '길하다' 않고 '무구'라 했다. 증자가 효도를 잘했어도 상 줄 게 아니듯, 자식의 소임일 뿐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정이천·주자·제가
효사(爻辭)
九二 大車以載 有攸往 无咎
구이는 큰 수레로써 (물건을) 실으니, 가는 바가 있으면 허물이 없다.
소상전(小象傳)
象曰:大車以載,積中不敗也。
상전에 말하였다. “큰 수레에 실음은, 가운데 쌓아도 무너지지 않음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九以陽剛居二,為六五之君所倚任。剛健則才勝,居柔則謙順,得中則无過。其才如此,所以能勝大有之任。
구(九)는 양강으로서 2위에 거하여, 육오 임금에게 의지하고 맡겨짐이 된다. 강건한즉 재주가 뛰어나고, 유(柔)에 거한즉 겸손하고 순하며, 중(中)을 얻은즉 허물이 없다. 그 재주가 이와 같으므로, 능히 대유의 임무를 감당한다.
如大車之材強壯,能勝載重物也。可以任重行遠,故有攸往而无咎也。
마치 큰 수레의 재질이 강장하여 능히 무거운 물건을 싣는 것을 감당함과 같다. 무거운 짐을 지고 멀리 갈 수 있으니, 그러므로 가는 바가 있으면 허물이 없다.
大有豐盛之時,有而未極,故以二之才,可往而无咎。至於盛極,則不可以往矣。
대유는 풍성한 때이나 소유하되 아직 극에 달하지 않았으므로, 2효의 재주로서 가히 가서 허물이 없다. 성대함이 극에 달하면 곧 가지 못한다.
주자『주역본의』
剛中在下,得應乎上,為大車以載之象。有所往而如是,可以无咎矣。占者必有此德,乃應其占也。
강중(剛中)으로 아래에 있고 위로 호응함을 얻으니, 큰 수레로써 싣는 상이 된다. 가는 바가 있어도 이와 같으면 허물이 없다. 점치는 자는 반드시 이러한 덕이 있어야 그 점에 응한다.
傳:壯大之車,重積載於其中,而不損敗。猶九二材力之強,能勝大有之任也。
정전에 말하였다. 장대한 수레는 그 가운데 무겁게 쌓고 실어도 훼손되거나 패하지 않는다. 마치 구이의 재력의 강함이 능히 대유의 임무를 감당함과 같다.
제가(諸家)의 주석
절재 채씨(節齋蔡氏):
大車,二也;載,謂載五也。剛健居中而應五,故有大車以載之象。
큰 수레는 구이요, 싣는다는 것은 육오를 싣는다는 것이다. 강건하게 중에 거하여 5효에 응하므로 큰 수레에 싣는 상이 있다.
임씨(임률, 林氏栗):
二五相應,陽志上行,故有有攸徃之象。以是而往,何咎之有?
2와 5가 상응하고 양(陽)의 뜻은 위로 가려 하므로 ’유유왕’의 상이 있다. 이것으로써 가는데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운봉 호씨(雲峯胡氏):
坤為大輿,九二體乾而曰大車者,輿指軫之方而能載者言,車則以其全體而言。
곤(坤)을 ’큰 수레’라 하는데, 구이는 건(乾)체이면서도 ’큰 수레’라 한 것은 어째서인가. ’여(輿)’는 수레바닥이 네모져서 능히 싣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거(車)’는 그 전체로써 말한 것이다.
引之以馬之健,行之以輪之圜,皆乾象也。况九二以剛居柔,柔則其虚足以受,剛則其健足以行,有大車象。
말의 굳셈으로 끌고 바퀴의 둥금으로 가니 다 건(乾)의 상이다. 하물며 구이는 강(剛)으로써 유(柔)에 거하니, 유한즉 그 비어있음이 족히 받을 수 있고, 강한즉 그 굳셈이 족히 갈 수 있어 큰 수레의 상이 있다.
徳應乎五,載上之象。有所往而如是,可以无咎矣。不曰吉者,大臣任天下之重,職當如此也。僅得无咎,處大有之難如此。
덕이 5효에 응하니 윗사람을 싣는 상이다. 가는 바가 있어도 이와 같으면 허물이 없다. ’길(吉)’이라 말하지 않은 것은, 대신(大臣)이 천하의 무거운 짐을 맡음에 직분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겨우 ’무구’를 얻었으니, 대유에 처하기의 어려움이 이와 같다.
임천 오씨(臨川呉氏):
車大則能勝重載。故載雖多,積於中而車行不至於敗,占之所以往而无咎也。
수레가 크면 능히 무겁게 싣는 것을 감당한다. 그러므로 짐이 비록 많아도 가운데 쌓으면 수레가 가도 패함에 이르지 않으니, 점이 이 때문에 가서 허물이 없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伊尹任天下之重,此爻當之。
이윤(伊尹)이 천하의 무거운 임무를 맡은 것이 이 효에 해당한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