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 곁을 잘못 두면
육삼은 음유(陰柔)한 자질로 양의 자리에 앉아 바르지도(正) 가운데(中)에 있지도 못하다. 곁에 둘 사람이 온통 마땅치 않은 자리다. 받드는 위(六四), 올라탄 아래(六二), 응하는 끝(上六)이 모두 음효이니, 어느 쪽으로 손을 뻗어도 ’그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육삼이 정작 응하는 상육은 비괘의 머리가 없어(比之无首) 무리에 등을 돌린 자다. 그와 곁을 이루니, 이것이 곧 사람 아닌 자와 친해진다는 ’비지비인(比之匪人)’이다.
문제의 뿌리는 바깥이 아니라 나의 봄(觀)에 있다. 동래 여씨는 이렇게 짚는다. 육이는 본래 중정한 군자인데, 육삼이 사심(私心)으로 그를 보았기에 소인으로 잘못 판단해 멀리하고, 정작 아닌 사람과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군자의 행위는 본래 공변된데, 사사로운 눈으로 보면 그 사사로움만 보인다. 세상이 온통 소인으로 보인다면 먼저 의심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그렇게 비추는 내 마음이다. 육삼의 불행은 상대의 허물이 아니라 자기 눈의 허물이다.
그래서 공자는 효사에 흉(凶)이라 쓰지 않고도 상전에서 “또한 상처가 아니겠는가(不亦傷乎)“라며 측은해한다. 운봉 호씨는 이를 맹자의 ’애재(哀哉·슬프도다)’와 같은 탄식으로 읽었다. 친비란 본래 편안함과 길함을 구하려는 일인데, 곁을 잘못 두면 도리어 후회와 부끄러움을 부른다. 진재 서씨가 든 역사가 아프다. 후한의 마원은 외효에게 제대로 된 주군을 섬기라 권했으나, 외효는 끝내 엉뚱한 쪽을 붙잡다가 몸을 죽이고 종족을 망쳐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정이천의 말대로, 이 효는 “곁할 바를 잃음(失所比)“을 깊이 경계한다.
오늘 하루의 태도
곁을 고르는 일은 삶을 고르는 일이다. 외로울수록 아무 손이나 붙잡고 싶어지지만, 바로 그 조급함이 육삼의 함정이다. 몸으로 먼저 알아차릴 수 있다. 함께 있으면 호흡이 가빠지고 어깨가 굳고 중심이 흐트러지는 사람이 있다. 그 감각을 무시하지 말라. 관계도 하나의 자세여서, 잘못 붙은 접점은 내 중심부터 무너뜨린다. 오늘 내 곁의 사람이 나를 세워 주는지 깎아내리는지 조용히 살피고, 동시에 나부터 누군가 곁에 두어 후회하지 않을 사람인지 물어라. 이웃을 옮겨 아들을 지킨 맹모의 뜻이 여기 있다. 곁을 바꾸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잘못된 자리에서 힘을 빼고 접점을 끊는 것이 상처를 막는 첫걸음이다.
원문과 주석 — 정이천·주자·제가
경문과 소상전
六三:比之匪人。
육삼은 사람이 아닌 자(그릇된 사람)와 친비한다.
象曰:比之匪人,不亦傷乎。
상전에 말하였다. ’사람이 아닌 자와 친비함’이, 또한 상처(슬픔)가 아니겠는가?
정이천 『이천역전』
三不中正,而所比皆不中正。四隂柔而不中,二有應而比初,皆不中正,匪人也。比於匪人,其失可知,悔吝不假言也,故可傷。二之中正,而謂之匪人,隨時取義各不同也。
삼효는 중정하지 못한데 친비하는 바가 모두 중정하지 못하다. 육사는 음유하여 중이 아니고, 육이는 응이 있어(오효와 응함) 초육과 친비하니, 모두 중정하지 못하여 ’비인(匪人)’이다. 비인과 친비하니 그 실수를 알 만하여, 후회와 인색함은 말할 겨를도 없으므로 ’가히 상심할 만하다’고 한 것이다. 이효는 중정하지만 여기(육삼의 입장)서는 ’비인’이라 일렀으니, 때에 따라 뜻을 취함(隨時取義)이 각기 다른 것이다.
象曰:人之相比,求安吉也。乃比於匪人,必將反得悔吝,其亦可傷矣。深戒失所比也。
상전 해설. 사람이 서로 친비하는 것은 안녕과 길함을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인과 친비하면 반드시 장차 도리어 회린(悔吝)을 얻을 것이니, 그 또한 상심할 만하다. 친비할 바를 잃은 것(失所比)을 깊이 경계한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어록
隂柔不中不正,承乘應皆隂,所比皆非其人之象。其占大凶,不言可知。
음유하고 부중부정하며, 받드는 것(사효), 타는 것(이효), 응하는 것(상효)이 모두 음이니, 친비하는 바가 모두 ’그 사람(바른 사람)’이 아닌 상이다. 그 점은 크게 흉하나,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朱子曰:初應四,四是外比於賢,為比得其人;二應五,五為顯比之君,亦為比得其人。惟三乃應上,上為比之无首者,故為比之匪人也。
주자가 말하였다. 초효는 사효에 응하니 사효는 밖으로 현인(구오)에게 친비하는 자라 ’비득기인(比得其人·사람을 잘 얻음)’이 되고, 이효는 오효에 응하니 오효는 ’현비(顯比)’의 임금이라 또한 ’비득기인’이 된다. 오직 삼효만이 상효에 응하는데, 상육은 ’비지무수(比之无首·비괘의 머리가 없음)’인 자이므로 ’비지비인’이 되는 것이다.
제가(諸家)
동래 여씨(東萊呂氏)
二之中正,本未嘗有應而比初。但三以私心觀之,故見其有應而比初耳。葢君子之所為本公,茍以私心觀之,則但見其私也。三既看得二為小人,故與二相比,未嘗得近君子之益,反得近小人之損。此三之罪,非二之咎也。爻辭隨時取義,最當詳考。
이효의 중정함은 본래 일찍이 (사사로운) 응이나 초효와의 친비가 있지 않다. 다만 삼효가 사심(私心)으로써 그를 보았기 때문에, 그가 응이 있고 초와 친비한다고 보았을 뿐이다. 대개 군자의 행위는 본래 공변되나, 만약 사심으로 그를 보면 단지 그 사사로움만 보이는 법이다. 삼효가 이미 이효를 소인으로 보았으므로, 이효와 친비하더라도 군자를 가까이하는 유익함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소인을 가까이하는 손해만 얻게 된다. 이것은 삼효의 죄이지 이효의 허물이 아니다. 효사가 때에 따라 뜻을 취함을 가장 마땅히 자세히 상고해야 한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匪人謂上六。五為比主,上獨背之,而六三位不中正,復與之應,是所比之非其人也。
’비인’은 상육을 이른다. 오효가 비의 주인인데 상육은 홀로 그를 배반하고, 육삼이 자리가 중정하지 못하면서 다시 그(상육)와 응하니, 이것은 친비하는 바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이다.
三居不正之位而應上,比之匪人也。上比无首而凶,己乃應之,亦可傷矣。馬援勸隗囂専意東方,而隗囂降蜀,至於殺身亾宗,為天下笑者,非大可傷乎?
삼효는 바르지 못한 자리에 거하면서 상효에 응하니 ’비지비인’이다. 상육은 ’비지무수’라 흉한데 자기가 이에 호응하니 또한 상심할 만하다. 후한 때 마원이 외효에게 동방(광무제 유수)에 뜻을 오로지 하라고 권했으나, 외효가 촉나라(공손술)에 항복하여 몸을 죽이고 종족을 망치고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된 것이 크게 상심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삼산 유씨(三山劉氏)
承乘應皆隂,匪人之象。凡居者之隣、學者之友、仕者之同僚,皆所當戒也。
받들고(承) 타고(乘) 응(應)하는 것이 모두 음(사효·이효·상효)이니 ’비인’의 상이다. 무릇 거주하는 자의 이웃, 배우는 자의 벗, 벼슬하는 자의 동료에 있어 모두 마땅히 경계해야 할 바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爻不言其大凶,而夫子於象惻然痛憫之曰「不亦傷乎」,即孟子「哀哉」之意,令人惕然有深省處。
효사에서 그 ’대흉’을 말하지 않았으나, 부자(공자)께서 상전에서 측은하게 여기고 아파하고 민망히 여겨 ’또한 상처가 아닌가’라고 하셨으니, 곧 맹자의 ’애재(슬프도다)’라는 뜻과 같아,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워하며 깊이 반성하는 바가 있게 한다.
출전: 정이천 『이천역전』, 주자 『주역본의』·『주자어류』, 동래 여씨·진재 서씨·삼산 유씨·운봉 호씨는 『주역전의대전』소인(所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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