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수지비(比)는 서로 가까이 의지하며 사귀는 괘다. 물이 땅 위에 스며 하나로 어우러지듯, 사람과 사람이 친밀히 모이는 도를 말한다. 초육은 그 여섯 자리 가운데 맨 아래, 사귐이 이제 막 시작되는 자리다. 관계의 첫머리에서 무엇을 근본으로 삼을 것인가—이 자리는 그것을 묻는다. 정이천은 그 답을 성신(誠信), 곧 성실한 믿음이라 했다. 속마음에 믿음이 없으면서 남과 친하려 하면, 대체 누가 나와 함께하겠는가.
효사는 그 믿음을 질그릇(缶)에 빗댄다. 질그릇은 투박하고 꾸밈이 없는 그릇이다. 겉은 볼품없어도 그 속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有孚盈缶) 그것으로 족하다. 겉을 문식(文飾)으로 덧칠하지 않아도, 안이 꽉 찬 진심은 저절로 밖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마침내 밖으로부터 뜻밖의 길함이 온다(終來有他吉). 여기서 ’타(他)’는 나와 응하지 않는 바깥, 곧 애써 구하지 않은 자리를 말한다. 초육은 정작 임금 자리인 구오와 음양으로 응하지도 않는데, 오직 진심 하나로 뜻밖의 인연을 부른다. 사귐은 쫓아다녀 얻는 것이 아니라, 안을 채워 오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조씨의 풀이가 이 자리의 무게를 짚는다. 비괘의 여섯 효는 응하느냐를 따지지 않고 오직 처음의 성실함을 묻는다. 시작에 믿음이 있으면 끝에 길함을 얻고, 시작이 성실하지 않으면 끝내 길함이 없다. 같은 괘의 상육이 흉한 것은 끝을 맺을 처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관계의 성패는 화려한 중간이 아니라, 조용한 첫 자리에서 이미 갈린다.
삶에의 적용
오늘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려 한다면, 나를 어떻게 보이게 할지부터 궁리하지 말고 내 안을 무엇으로 채웠는지 먼저 돌아보라. 말을 꾸미고 처지를 포장하는 대신, 하루의 성실—제때 일어나 몸을 움직이고 할 일을 놓지 않는 그 꾸준함—으로 속을 채워라. 질그릇은 몸이고, 가득 참은 그 몸에 쌓인 진실함이다. 안이 차면 향이 번지듯 신뢰는 저절로 밖으로 나간다. 구하지 말고 채워라. 오늘 채운 만큼, 인연은 뒷날 스스로 찾아온다.
통찰
사귐의 첫 자리는 나를 내세우는 자리가 아니라 나를 채우는 자리다. 지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속이 꽉 찬 사람에게는, 부르지 않은 길이 뒤에서 온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풀이
경문
初六:有孚比之,无咎。有孚盈缶,終來有他吉。
초육은 믿음을 두고 친비하니 허물이 없다. 믿음이 질그릇에 가득 차 있으면, 마침내 밖으로부터 다른 길함이 온다.
象曰:比之初六,有他吉也。
상전에 말하였다. ’비(比)의 초육’은 다른 길함이 있는 것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傳曰:初六,比之始也。相比之道,以誠信為本。中心不信而親人,人誰與之?故比之始,必有孚誠,乃无咎也。孚,信之在中也。
전에 말하였다. 초육은 비(比)의 시작이다. 서로 친비하는 도는 성신(誠信)으로써 근본을 삼는다. 속마음이 믿음직하지 않은데 남과 친하려 하면, 남들이 누구와 더불어 하겠는가? 그러므로 비의 시작은 반드시 믿음과 정성이 있어야 이에 허물이 없다. ’부(孚)’는 믿음이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有孚盈,終來有他吉。傳曰:誠信充實於内,若物之盈滿於缶中也。缶,質素之噐。言若缶之盈實,其中外不加文飾,則終能來有他吉也。他,非此也,外也。若誠實充於内,物无不信,豈用飾外以求比乎?誠信中實,雖他外皆當感而來從。孚信,比之本也。
정성스러운 믿음이 내면에 충실한 것이, 마치 물건이 질그릇 속에 가득 찬 것과 같다. 질그릇(缶)은 질박하고 수수한 그릇이다. 질그릇이 그 속을 가득 채우고 밖으로 꾸밈(文飾)을 더하지 않는 것과 같으면, 마침내 능히 다른 길함을 오게 함을 말한 것이다. ’타(他)’는 여기가 아니요, 밖이다. 만약 성실함이 안에 가득 차서 사물이 믿지 않음이 없다면, 어찌 밖을 꾸며서 친비함을 구하겠는가? 성신이 가운데 가득 차면, 비록 다른 밖의 사람이라도 마땅히 감동하여 와서 따를 것이다. 부신(孚信)은 비(比)의 근본이다.
주자 『주역본의』
本義曰:比之初,貴乎有信,則可以无咎矣。若其充實,則又有他吉也。
본의에 말하였다. 비(친함)의 초기에는 믿음이 있음을 귀하게 여기니, 곧 허물이 없다. 만약 그 믿음이 충실하면 또한 다른 길함이 있다.
朱子曰:孚有在陽爻者,有在隂爻者。伊川謂「中虚信之本,中實信之質」是也。
주자가 말하였다. 부(孚, 믿음)에는 양효에 있는 것이 있고 음효에 있는 것이 있다. 이천(정이천)이 ’중허(中虛)는 믿음의 본(本)이요, 중실(中實)은 믿음의 질(質)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朱子曰:終來有他,説將來似顯比,便有那周遍底意思。
주자가 말하였다. ’마침내 다른 길함이 온다’는 것은, 장래에 현비(顯比, 5효의 드러난 친비)와 비슷하게 문득 저 두루 미치는 뜻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제가 — 란씨 정서 (『주역전의대전』수록)
蘭氏廷瑞曰:易言有孚者二十一。有言信其如此者,有言有孚誠者。
란씨 정서가 말하였다. 역(易)에서 ’유부(有孚)’를 말한 것이 21번이다. ’그 이와 같음을 믿는다’고 말한 것도 있고, ’믿음과 정성이 있다’고 말한 것도 있다.
제가 — 후재 풍씨
厚齋馮氏曰:缶,瓦噐。爾雅云盎也。初陽實,六隂虚。虚者,缶也;實者,盈也。
후재 풍씨가 말하였다. 부(缶)는 질그릇이다. 이아(爾雅)에 이르길 ’앙(盎, 동이)’이라 했다. 초(1)는 양이라 실(實)하고 육(6)은 음이라 허(虛)하니, 빈 것은 질그릇이요, 찬 것은 가득 참(盈)이다.
제가 — 운봉 호씨
雲峰胡氏曰:與人交,止於信。親比之初,能有誠信,所以比之无咎。及其誠信充實,則非特无咎,又有他吉。初六不與五應,故曰有他。大過九四、中孚初九,皆曰有他,皆指非應而言。但彼則戒其有他向之心,此則許其有他至之吉也。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사람과 사귐은 신(信)에 그친다. 친비의 초기에 능히 성신이 있으므로 비(比)함에 허물이 없다. 그 성신이 충실함에 미쳐서는, 단지 허물이 없을 뿐 아니라 또 다른 길함이 있다. 초육은 5효와 응하지 않으므로 ’타(他, 남·밖)’라고 했다. 택풍대과 구사와 풍택중부 초구에서도 모두 ’유타(有他)’라고 했는데 다 정응이 아님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다만 저것들(대과·중부)에서는 다른 곳으로 향하려는 마음을 경계한 것이고, 여기(비괘)에서는 다른 곳에서 이르는 길함을 허여한 것이다.
제가 — 사수 정씨
沙隨程氏曰:終來有他吉者,非初之時,吉在後也。
사수 정씨가 말하였다. ’종래유타길’은 초기의 때가 아니요, 길함이 뒤에 있는 것이다.
제가 — 조씨
趙氏曰:易六爻貴於正應,其近而相得,亦有不應者。惟比諸爻,不論應否,而専以比五為義。言比之初六者,比之道在乎始也。始能有孚,則終致有他之吉;其始不誠,終焉得吉?上六之凶,由不終也。
조씨가 말하였다. 역의 여섯 효는 정응(正應)을 귀하게 여기며, 가까우면서 서로 얻는 것(比)은 또한 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오직 비괘의 여러 효는 응하느냐 아니냐를 논하지 않고, 오직 5효(구오)와 친비함을 의리로 삼는다. 상전에서 ’비의 초육’을 말한 것은, 비의 도가 시작(始)에 있기 때문이다. 시작에 능히 믿음이 있으면 마침내 타인의 길함을 부르지만, 그 시작이 성실하지 않으면 마침내 어찌 길함을 얻겠는가? 상육의 흉함은 끝을 맺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