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水師 · 64괘 사전

구이(九二) — 在師中,吉,无咎

在師中,吉,无咎,王三錫命。
길함을 얻거나 기뻐함이효, 양강이 하괘 중에 거함 (중/적합)만방을 품음호응/연대

풀이

구이는 사괘의 유일한 양효로, 하괘의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다섯 음효가 모두 이 하나의 양에게 돌아가니, 궁궐에 있는 임금(육오)이 아니라 전장 한복판에서 군을 실제로 이끄는 장수의 자리다. 양강한 능력을 지녔으되 가운데 있어 치우치지 않는다. 그래서 길하고 허물이 없다. 정이천은 다른 괘에서도 구이가 임금에게 임용되는 경우가 있으나, 오직 사괘에서만 홀로 그 일을 주관하고 뭇 음이 돌아가는 바가 되므로 그 뜻이 가장 크다고 했다.

효사의 핵심은 재사중(在師中)과 왕삼석명(王三錫命)이다. 정이천은 이 효를 전제(專制)로 풀었다. 예로부터 성문 밖의 일, 곧 곤외지사(閫外之事)는 장수가 전권으로 결단한다. 임금이 전장 밖에서 시시콜콜 간섭하면 전쟁에서 진다. 그러나 그 전권은 방종이 아니라 중도(中道)를 얻은 전권이다. 전횡을 믿으면 아랫사람 된 도리를 잃고, 전제하지 않으면 공을 이룰 이치가 없다. 위엄과 온화함이 함께 이르러야 길하다. 임금이 명을 세 번이나 거듭 내린 것은, 예우가 가벼우면 위엄이 서지 않아 병사가 장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소상전은 이 신임의 근거와 목적을 함께 밝힌다. 재사중이 길한 것은 하늘, 곧 임금의 총애를 받들기 때문이요(承天寵), 세 번 명을 내린 것은 만방을 품기 위함이다(懷萬邦). 이 권력은 장수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건안 구씨의 말처럼, 왕이 병사를 쓰는 것은 부득이한 일이지 살육을 즐기는 것이 어찌 본심이겠는가. 힘으로 누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덕으로 온 세상을 품어 안는 것, 그것이 세 번 거듭된 명령의 진짜 뜻이다.

오늘, 이 효를 어떻게 살 것인가

이 효는 힘을 쥔 사람에게 두 가지를 함께 요구한다. 하나는 맡겨진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결단하는 중심이고(在師中), 다른 하나는 그 힘을 무엇에 쓰는가이다(懷萬邦). 몸으로 옮기면 무게를 몸의 정중앙에 두고 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머리가 손발을 일일이 통제하려 하면 움직임이 굼떠지듯, 중심이 서면 세세한 판단은 몸이 알아서 처리한다. 척추를 곧게 세워 하늘의 힘을 받아들이되, 그 힘으로 남을 누르려 들지 않는 것. 오늘 내게 주어진 권한이 있다면, 그것을 누구를 이기기 위해 쓰는지 아니면 품기 위해 쓰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통찰

중심에 선 사람은 힘을 얻지만, 그 힘의 크기가 아니라 쓰임이 그를 결정한다. 치우치지 않아 믿음을 얻고, 그 믿음으로 받은 힘을 누르는 데가 아니라 품는 데 쓴다. 오늘 내 손에 쥐어진 작은 권한 하나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기 위해 쓸 수 있는지 돌아본다.

원문과 주석 — 구이(九二) 在師中,吉,无咎

경문·소상전

九二:在師中,吉,无咎,王三錫命。 구이는 군대의 가운데에 있으니(在師中), 길하고 허물이 없으며, 왕이 세 번 명을 내린다(王三錫命).

象曰:在師中吉,承天寵也。王三錫命,懷萬邦也。 상전에 말하였다. ’재사중길’은 하늘(왕)의 총애를 받들기 때문이요(承天寵), ’왕삼석명’은 만방을 품기 위함이다(懷萬邦).

정이천『이천역전』

師卦唯九二一陽,為衆隂所歸。五居君位,是其正應。二乃師之主,專制其事者也。居下而専制其事,唯在師則可。自古命将,閫外之事,得専制之。在師,専制而得中道,故吉而无咎。葢恃専則失為下之道,不専則无成功之理,故得中為吉。凡師之道,威和並至則吉也。旣處之盡其善,則能成功而安天下,故王錫寵命至于三也。凡事至于三者,極也。六五在上,既専倚任,復厚其寵數。葢禮不稱則威不重,而下不信也。他卦九二為六五所任者有矣,唯師専主其事,而為衆隂所歸,故其義最大。 사괘는 오직 구이 하나의 양이 뭇 음들이 돌아가는 바가 된다. 5효는 군위에 거하여 정응이 된다. 2효는 곧 군대의 주인으로 그 일을 독단으로 마름질하는(專制) 자이다. 아래에 거하면서 그 일을 전제함은 오직 군대에 있어서만 가능하다. 예로부터 장수에게 명할 때 성문 밖의 일(閫外之事)은 전제함을 얻었다. 군대에 있어서 전제하되 중도(中道)를 얻었으므로 길하고 허물이 없다. 대개 전횡함을 믿으면 아랫사람 된 도리를 잃고, 전제하지 않으면 성공할 이치가 없으므로 중을 얻음이 길함이 된다. 무릇 군대의 도는 위엄과 온화함이 아울러 이르러야(威和並至) 길하다. 이미 처신함에 그 선을 다하였은즉 능히 공을 이루어 천하를 편안하게 하므로, 왕이 총애하는 명을 내리기를 세 번에 이르게 한 것이다. 무릇 일이 ’삼(三)’에 이른다는 것은 지극한 것이다. 육오가 위에 있으면서 이미 오로지 의지하고 맡겼으며, 다시 그 총애의 숫자를 두터이 했다. 대개 예우가 걸맞지 않으면 위엄이 무겁지 않아 아랫사람이 믿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괘에서도 구이가 육오에게 임용되는 경우가 있으나, 오직 사괘에서만 오로지 그 일을 주관하고 뭇 음이 돌아가는 바가 되므로 그 뜻이 가장 크다.

人臣之道,於事无所敢専,唯閫外之事,則専制之。雖制之在已,然因師之力而能致者,皆君所與而職當為也。世儒有論魯祀周公以天子禮樂,以為周公能為人臣不能為之功,則可用人臣不得用之禮樂。是不知人臣之道也。夫居周公之位,則為周公之事,由其位而能為者,皆所當為也。周公乃盡其職耳。子道亦然。唯孟子為知此義,故曰:「事親若曽子者可也。」未嘗以曾子之孝為有餘也。葢子之身所能為者,皆所當為也。 신하의 도는 일에 있어 감히 오로지하는 바가 없으나, 오직 곤외지사(전쟁터의 일)는 전제한다. 비록 마름질함이 자기에게 있으나, 군대의 힘으로 인하여 능히 이르게 된 공로는 모두 임금이 준 것이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세상의 유학자들이 노나라가 주공에게 천자의 예악으로 제사 지낸 것을 논하면서 ’주공이 다른 신하가 하지 못한 공을 세웠으므로 신하가 쓰지 못할 예악을 쓸 수 있다’고 여기는데, 이는 신하의 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대저 주공의 지위에 거하면 곧 주공의 일을 하는 것이니, 그 지위로 말미암아 능히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마땅히 해야 할 바(所當為)이다. 주공은 곧 그 직분을 다했을 뿐이다. 자식의 도 또한 그러하다. 오직 맹자만이 이 뜻을 알았으므로 ’어버이 섬기기를 증자와 같이 하는 것이 옳다’고 하셨으니, 일찍이 증자의 효를 ’남음이 있다(과하다)’고 여기지 않으셨다. 대개 자식의 몸으로 능히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마땅히 해야 할 바이기 때문이다.

象傳曰:在師中吉者,以其承天之寵任也。天謂王也。人臣非君寵任之,則安得専征之權而有成功之吉?象以二専主其事,故發此義,與前所云世儒之見異矣。王三錫,以恩命褒其成功,所以懷萬也。 상전 해설: ’재사중길’은 그가 하늘의 총애와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천(하늘)’은 왕을 이른다. 신하가 임금의 총애와 신임이 아니면 어찌 마음대로 정벌하는 권한(專征)을 얻어 성공하는 길함이 있겠는가. 상전에서 2효가 오로지 그 일을 주관하므로 이 뜻을 밝혔으니, 앞서 말한 세유(世儒)의 견해와는 다르다. ’왕삼석’은 은혜로운 명으로 그 성공을 포상하는 것이니, 이로써 만방을 품어 위로하는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本義曰:九二在下,為衆隂所歸,而有剛中之徳。上應於五,而為所寵任,故其象占如此。 본의에 말하였다. 구이가 아래에 있어 뭇 음들이 돌아가는 바가 되고, 강중(剛中)의 덕이 있다. 위로 5와 응하여 총애와 신임을 받으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다.

朱子曰:在師中吉,言以剛中之徳在師中,所以為吉。 주자가 말하였다. 재사중길은 강중의 덕으로써 군대 가운데(지휘관)에 있으므로 길하게 됨을 말한 것이다.

제가(諸家) — 겸산 곽씨

兼山郭氏曰:威克厥愛允濟,愛克厥威允㒺功。九二剛勝之將,能用中焉,是以有功而宜膺寵錫者也。 겸산 곽씨가 말하였다. (『서경』에 이르길) 위엄이 그 사랑을 이기면 진실로 구제하고, 사랑이 그 위엄을 이기면 진실로 공이 없다고 했다. 구이는 강함이 우세한 장수이나 능히 중(中)을 썼으므로, 이로써 공이 있어 마땅히 총애의 하사를 받는 자이다.

제가(諸家) — 임천 오씨

臨川吳氏曰:錫命,如王使宰周公錫齊侯命,王使内使過錫晉侯命是也。至于三者,天寵之優渥也。 임천 오씨가 말하였다. 명을 내린다(錫命)는 것은, 왕이 재(宰) 주공을 시켜 제후(齊侯)에게 명을 내리고, 왕이 내사(内使) 과(過)를 시켜 진후(晉侯)에게 명을 내린 것과 같다. 세 번에 이른다는 것은 하늘의 총애가 넉넉하고 두터운 것이다.

제가(諸家) — 건안 구씨

建安丘氏曰:九二即師之丈人也。以一陽統衆隂,而居下卦之中,有帥師之象。唯二以剛居柔,得師之中,无過不及,故吉无咎,獨與卦辭同也。 건안 구씨가 말하였다. 구이는 곧 (괘사에서 말한) 사괘의 장인(丈人)이다. 일양으로서 뭇 음을 거느리고 하괘의 가운데 거하니 군대를 통솔하는 상이 있다. 오직 2효만이 강(剛)으로서 유(柔)의 자리에 거하여 군대의 중을 얻어 과불급이 없으므로 ‘길하고 허물이 없다’ 하였으니, 유독 괘사와 그 문장이 같다.

又曰:上承天子之寵任,而以兵權屬之。錫命至三,使之得専閫外之事。王者用兵非得已,嗜殺豈其本心?故三錫之命,惟在於懐綏萬而已。 또 말하였다. 위로 천자의 총애와 신임을 받들어 병권을 그에게 위촉한 것이다. 명을 내림이 세 번에 이르러 그로 하여금 성문 밖의 일을 전결하게 하였다. 왕자가 병사를 쓰는 것은 부득이한 것이지, 살육을 즐기는 것이 어찌 그 본심이겠는가. 그러므로 세 번 내린 명령은 오직 만방을 품어 편안하게 함에 있을 뿐이다.

제가(諸家) — 운봉 호씨

雲峰胡氏曰:九二剛中,所謂丈人者,故吉而无咎。六四无咎不言吉,三則凶矣。二曰「王三錫命」,五應也;五曰「長子帥師」,二應也。五應二,故曰錫。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구이가 강중하니 이른바 장인(丈人)이므로 길하고 허물이 없다. 육사는 무구이나 길을 말하지 않았고, 육삼은 흉하다. 2효에서 ’왕이 세 번 명을 내린다’고 한 것은 5효의 응원 때문이요, 5효에서 ’장자(長子)가 군대를 통솔한다’고 한 것은 2효의 응원 때문이다. 5가 2에 응하므로 ’하사한다(錫)’고 한 것이다.

雲峰胡氏曰:言王命,象言天寵,亦春秋王必稱天之意也。 또 말하였다. 효사에서 왕명(王命)을 말했는데 상전에서 천총(天寵)을 말한 것은, 또한 『춘추』에서 ’왕(王)’을 반드시 ’천(天)’이라 칭하는 뜻과 같다.

이 효가 動하면重地坤(2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