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상구는 몽(蒙)괘의 맨 끝, 여섯 효 가운데 가장 위에 놓인 양효다. 몽매함이 극에 달한 자리다.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부드럽게 감싸 안아도(포몽) 고쳐지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강하게 쳐서 깨우친다 — 이것이 격몽(擊蒙)이다. 그러나 상구는 강함이 지극하되 중(中)을 얻지 못했다(과강부중). 힘은 넘치는데 절제의 자리를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은 격몽이라는 말 뒤에 곧바로 경계를 붙인다. 도적이 되지 말라(불리위구), 도적을 막는 데 써라(이어구).
정이천은 이 두 갈래를 또렷이 갈라 놓는다. 남의 몽매함을 다스리는 것은 도적을 막는 일(어구)이요, 방자하게 강하고 포악하게 구는 것은 스스로 도적이 되는 일(위구)이다. 순임금이 유묘를 정벌하고 주공이 삼감의 난을 토벌한 것은 질서를 지키기 위한 어구였고, 진시황과 한무제가 병력을 소진해 가며 주벌한 것은 위구였다. 같은 힘이라도 지키려고 쓰면 정당하고, 부수려고 쓰면 폭력이 된다. 힘 그 자체가 아니라 힘이 향하는 마음이 정당성을 가른다.
주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효를 전쟁이라는 큰일에만 가두지 말라 한다. “모든 일이 다 그러하니 사람을 가르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가장 얕고 가까운 자리, 곧 자기 몸을 다스리는 데서 읽으라는 것이다. 나쁜 습관을 끊되 지나치게 몰아붙이면 도리어 자신을 해친다. 오직 밖에서 파고드는 유혹(외유)을 막아 본래의 참되고 맑은 바탕(진순)을 지키는 데 엄격함을 쓸 때, 그 엄함이 다소 지나쳐도 마땅함을 얻는다. 소상전이 ’위아래가 모두 순하다(상하순)’고 한 까닭이 여기 있다. 윗사람이 과하게 포악하지 않고, 아랫사람이 제 몽매함을 떨쳐 내니, 위아래가 다 함께 순해진다.
오늘 하루의 태도
내 안의 게으름과 오래된 나쁜 버릇을 마주하는 날에는 엄격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학과 훈육은 다르다. 목표는 자신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다. 몸을 단련해 본 사람은 안다 — 나태를 끊는 결단은 날카로워야 하지만, 이미 지친 몸을 미움과 조급함으로 몰아붙이면 그것은 어구가 아니라 위구가 되어 결국 몸을 상하게 한다. 밖에서 스며드는 유혹을 끊어 내고 본래의 맑음을 지키는 데까지, 딱 거기까지만 힘을 쓰라. 매는 미움에서 나오면 원한을 남기고, 지키려는 마음에서 나오면 사람을 바로 세운다. 오늘 누군가를, 혹은 나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면 먼저 물어라 — 나는 지금 지키려 하는가, 부수려 하는가.
원문과 주석 — 상구 효사·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효사(爻辭)와 소상전(小象傳)
上九:擊蒙。不利為寇,利禦寇。 상구는 몽매함을 친다(격몽). 도적이 되는 것은 이롭지 않고(불리위구), 도적을 막는 것이 이롭다(이어구).
象曰:利用禦寇,上下順也。 소상전에 말하였다. “’도적을 막는 것을 씀이 이로움’은, 위와 아래가 모두 순하기 때문이다(상하순).”
정이천『이천역전』
傳曰:九居䝉之終,是當䝉極之時。人之愚䝉既極,如苗民之不率,為㓂為亂者,當擊伐之。然九居上,剛極而不中,故戒不利為㓂。治人之䝉,乃禦㓂也;肆為剛暴,乃為㓂也。若舜之征有苗、周公之誅三監,禦㓂也;秦皇漢武窮兵誅伐,為㓂也。 구(九)는 몽의 마침에 거하니 이는 몽매함이 지극한 때를 당한 것이다. 사람의 어리석고 몽매함이 이미 극에 달하여, 마치 묘민이 따르지 않고 도적이 되고 난을 일으키는 것과 같으면, 마땅히 그들을 쳐서 정벌해야 한다. 그러나 구가 위에 거하여 강함이 지극하고 중(中)이 아니므로, ’도적이 됨은 이롭지 않다’고 경계한 것이다. 남의 몽매함을 다스리는 것은 곧 도적을 막는 것(어구)이요, 방자하게 강하고 포악하게 구는 것은 곧 도적이 되는 것(위구)이다. 순임금이 유묘를 정벌하고 주공이 삼감의 난을 토벌한 것은 어구이고, 진시황과 한무제가 병력을 다하여 주벌한 것은 위구이다.
象曰:利用禦㓂,上下皆得其順也。上不為過暴,下得擊去其䝉,禦㓂之義也。 (소상전 해설) “도적을 막는 것을 씀이 이로움은, 위와 아래가 모두 그 순함을 얻기 때문이다. 윗사람은 지나치게 포악하지 않고, 아랫사람은 그 몽매함을 쳐서 없애게 됨이 어구의 뜻이다.”
주자『주역본의』및 어록
本義曰:以剛居上,治䝉過剛,故為擊䝉之象。然取必太過,攻治太深,則必反為之害。惟捍其外誘,以全其真純,則雖過於嚴密,乃為得宜。故戒占者如此。凡事皆然,不止為誨人也。(禦㓂以剛,上下皆得其道。) 강(양)으로서 위에 거하여 몽을 다스림이 지나치게 강하므로(과강) 격몽의 상이 된다. 그러나 기필하여 취함이 태과하고 공격하여 다스림이 너무 깊으면, 반드시 도리어 해가 된다. 오직 그 외부의 유혹(외유)을 막아서 그 참되고 순수함(진순)을 온전히 한다면, 비록 엄밀함이 지나칠지라도 마땅함을 얻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점치는 자에게 이와 같이 경계한 것이다. 모든 일이 다 그러하니 단지 사람을 가르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도적을 막되 강으로써 하면 상하가 다 그 도를 얻는다.)
朱子曰:占得此爻,凡事不可過當。如伊川作用兵説亦是,但只做得一事用。不如且就淺處説去,却事事上有用。若便説深了,則一事用得,别事用不得。 주자가 말하였다. “이 효를 점쳐 얻으면 모든 일에 지나치게(마땅함을 넘게) 해서는 안 된다. 이천이 용병(전쟁)으로 설명한 것도 옳으나, 단지 한 가지 일에만 쓰일 수 있다. 우선 얕은 곳(일상·수양)에 나아가 설명해 나가는 것만 못하니, 도리어 일마다 쓰임이 있다. 만약 문득 깊은 곳을 설명해 버리면, 곧 한 가지 일에는 쓸 수 있으나 다른 일에는 쓸 수 없게 된다.”
或問:本義只就自身克治上説,如何? 朱子曰:事之大小都然。治身也恁地,若治人做得太甚,亦反成為㓂。 (물음) “본의에서는 단지 자신의 몸을 극기하고 다스리는 것에서 설명하였는데 어떠합니까?” (답) 주자가 말하였다. “일의 크고 작음이 다 그러하다. 몸을 다스리는 것도 그러하고, 만약 남을 다스림에 짓기를 너무 심하게 하면 또한 도리어 도적이 된다.”
제가(諸家)
포전 장씨 — 구이의 ’포몽’과 상구의 ’격몽’을 선악의 대비로 짚는다.
莆陽張氏曰:諸爻皆䝉,其不䝉者惟二剛。二以剛居中,包䝉以開其善;上以剛過中,擊䝉以懲其惡。 모든 효가 다 몽매한데 몽매하지 않은 자는 오직 두 양(구이·상구)뿐이다. 이효는 강으로서 중에 거하므로 ’포몽(包蒙)’하여 그 선(善)을 열어 주고, 상효는 강으로서 중을 지나쳤으므로 ’격몽(擊蒙)’하여 그 악(惡)을 징계한다.
진재 서씨 — 소통이 끊긴 자리에서 격몽이 나옴을 밝힌다.
進齋徐氏曰:上過剛不中,又居過髙之位。在下者既昏䝉,在上者又髙亢,情意不接,彼此扞格,乃以為瀆而至於擊䝉也。 상구는 지나치게 강하고 중이 아니며, 또 지나치게 높은 지위에 거한다. 아래에 있는 자는 이미 혼몽하고 위에 있는 자는 또 높고 뻣뻣하여, 정과 뜻이 접하지 않고 피차간에 격하고 막히니, 이에 ’모독한다’고 여겨서 몽을 치는 데(격몽) 이른 것이다.
백운 곽씨 — 과강한 재주는 감싸기보다 막는 데 써야 한다.
白雲郭氏曰:上九過剛之才,䝉則為暴,包䝉則不能容。以之禦㓂則利矣。能禦㓂,亦去衆䝉之害也。 상구는 과강한 재주라, 몽매함을 다스리려 하면 포악함이 되고, 몽을 감싸려 해도 능히 용납하지 못한다. 이것으로써 도적을 막으면(어구) 이롭다. 능히 도적을 막음은 또한 뭇 몽매한 자들의 해로움을 제거하는 것이다.
운봉 호씨 — 본의가 상구를 구이와 응하는 것으로 본 뜻을 풀고, 상하가 함께 순해지는 이치를 밝힌다.
雲峰胡氏曰:本義釋此爻與九二爻相應。盖所治既廣而又攻治太深,物性不齊不可一槩取必,而又取必太過,是欲去其害而反為害者也,故曰不利為㓂。人性純一未之䝉,不能不為外誘之物所化。惟為之捍其外誘以全其真純,雖過於嚴,乃為得宜,故曰利禦㓂。且曰「凡事皆然,不止為誨人也」,朱子之教人可謂精且備矣。 본의(주자)에서 이 효를 해석하되 구이 효와 서로 응하는 것으로 보았다. 대개 다스리는 바가 이미 넓은데 또 공격하여 다스림이 너무 깊으면, 사물의 성질이 가지런하지 않아 일률로 기필할 수 없거늘 또 기필함이 태과하니, 이는 그 해를 제거하려다 도리어 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적이 됨은 이롭지 않다’고 하였다. 사람의 성품은 순일하여 아직 몽매하지 않았으나, 밖에서 유혹하는 사물(외유)에 동화되지 않을 수 없다. 오직 그를 위해 그 외유를 막아 진순함을 온전히 한다면 비록 엄함이 지나쳐도 마땅함을 얻으므로, ’도적을 막음이 이롭다’고 하였다. 또 ’모든 일이 다 그러하니 사람을 가르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주자가 사람을 가르침이 정밀하고 또 완비되었다 할 만하다.
又曰:上之剛不為㓂而止㓂,上之順也;下之人随其所止而止之,下之順也。 또 말하였다. “윗사람의 강함이 도적이 되지 않고 도적을 그치게 하니 윗사람의 순함이요, 아랫사람이 그 그치는 바를 따라서 그치니 아랫사람의 순함이다(상하순).”
건안 구씨 — 몽괘 여섯 효가 두 양을 중심으로 짜인 구조를 총평한다.
建安丘氏曰:䝉卦六爻,二陽四隂,故以二陽為四隂之主。然九二得中得時,上九過中失時,故二又為䝉之主。其曰包䝉吉、納婦吉,則爻之所指可見矣。至上九,則但擊䝉禦㓂而已。其上下四隂爻,皆因二以起義。五應二,則為童䝉之吉;初承二,則為䝉之利;四逺二,不明者也,則為用䝉之吝;三乘二,不順者也,聖人不以䝉待之,故此爻不言䝉。 몽괘 여섯 효는 두 양과 네 음이므로 두 양(구이·상구)이 네 음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구이는 중을 얻고 때를 얻었으며 상구는 중을 지나쳐 때를 잃었으므로, 구이가 또 몽괘의 주인이 된다. (구이 효사에서) ’포몽길·납부길’이라 한즉 효가 가리키는 바를 알 수 있다. 상구에 이르러서는 단지 ’격몽·어구’일 뿐이다. 그 위아래 네 음효는 모두 구이로 인하여 뜻을 일으킨다. 오효는 구이에 응하므로 ’동몽의 길함’이 되고, 초효는 구이를 받드므로(承) ’몽의 이로움’이 되며, 사효는 구이와 멀어 밝지 못한 자이니 ’곤몽의 부끄러움’이 되고, 삼효는 구이를 탔으니(乘) 순하지 않은 자라 성인이 몽으로 대우하지 않았으므로 이 효에서만 몽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