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둔괘(屯)의 육이는 부드럽고 바른 덕(中正)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자리가 편치 않다. 바로 아래에 굳센 초구가 버티고 있어(乘剛), 위에 있는 제 짝 구오에게 가고 싶어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말에 올랐다가 다시 내리고, 나아가려다 맴도는 모습(屯如邅如, 乘馬班如)이 그것이다. 가까이서 밀어붙이는 초구가 실은 도적이 아니라 혼인을 청하는 자(匪寇婚媾)이지만, 힘으로 막무가내 들이대니 당하는 입장에서는 도적처럼 느껴질 뿐이다.
여기서 육이가 택한 길은 굴복이 아니라 지킴이다. 곧게 지켜 함부로 시집가지 않고(女子貞不字), 무려 십 년을 기다린 끝에야 비로소 제 짝을 만난다(十年乃字). 공자는 소상전에서 ’육이의 어려움은 강함을 탔기 때문이요, 십 년 만에 시집감은 떳떳함으로 돌아가는 것(反常)’이라 짚었다. 정이천은 이를 두고 ’진실로 정고하여 바꾸지 않으면(貞固不易) 둔난이 극에 달해 반드시 통한다’고 하였고, 주자 또한 ’수가 다하고 이치가 극해지면 망령되이 구하던 자는 떠나고 바른 짝이 합한다’고 풀었다. 십 년이란 물리적 햇수가 아니라, 막힌 것이 끝내 열릴 때까지의 시간이다.
변화의 길목에 선 사람에게 이 효는 말한다. 지금 가장 가까이서 나를 흔드는 힘이 반드시 악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내 길이 아닐 뿐이다. 시험은 그 압박에 휘둘려 당장의 손을 잡느냐, 아니면 중심을 지키며 때를 기다리느냐에 있다. 조급하게 눈앞의 손을 잡으면 명분과 훗날의 인연을 함께 잃는다. 곧음(貞)이란 완고함이 아니라, 흔들리는 자리에서도 제 축을 내어주지 않는 힘이다.
삶에의 적용
오늘, 곁에서 세게 밀어붙이는 힘을 만나거든 곧바로 맞부딪지 말라. 강한 힘이 들어올 때는 버티되 딱딱하게 맞서지 않는다. 몸의 중심을 아래로 낮추고, 접촉은 유지하되 나의 축은 내어주지 않는다. 호흡을 길게 하여 반응을 한 박자 늦추고, 나아가려는 마음이 조급해질 때 오히려 자세를 가다듬는다. 십 년의 기다림이란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하루 흔들리지 않고 곧음을 한 번 더 지켜내는 일의 반복이다. 그 지킴이 쌓이면, 막혔던 것은 반드시 제 때에 열린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 정이천, 주자, 제가
경문·소상전
六二:屯如邅如,乘馬班如。匪寇婚媾,女子貞不字,十年乃字。
육이는 (가기 어려워) 머뭇거리고 맴도니, 말을 탔다가 내린다. 도적이 아니라 청혼하는 것이니, 여자가 곧게 지켜 시집가지 않다가, 십 년이 되어서야 시집간다.
象曰:六二之難,乘剛也。十年乃字,反常也。
상전에 말하였다. ’육이의 어려움’은 강한 것을 탔기 때문이요, ’십 년 만에 시집감’은 떳떳함(본래의 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二以陰柔居屯之世,雖正應在上,而逼於初剛,故屯難邅囘如辭也。乗馬欲行也,欲從正應,而復班如不能進也。班,分布之義。下馬為班,與馬異處也。二當屯世,雖不能自濟,而居中得正,有應在上,不失義者也。然逼近於初,陰乃陽所求,柔者剛所陵。柔當屯時,固難自濟,又為剛陽所逼,故為難也。設匪逼於寇難,則往求於婚媾矣。婚媾,正應也。寇,非理而至者。二守中正,不苟合於初,所以不字。苟貞固不易,至于十年,屯極必通,乃獲正應而字育矣。以女子陰柔,苟能守其志節,久必獲通,况君子守道不囘乎?初為賢明剛正之人,而為寇以侵逼於人,何也?曰:此自據二以柔近剛而為義,更不計初之德如何也。易之取義如此。
이효는 음유(陰柔)로서 둔난의 세상에 거하여, 비록 정응(구오)이 위에 있으나 초구의 강함에 핍박받으므로, 어렵고 맴돌아 감이 효사와 같다. ’승마(말을 탐)’는 가고자 함이다. 정응을 따르고자 하나 다시 ’반여(班如)’하여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반(班)’은 나누어 퍼뜨린다는 뜻이다. 말에서 내리는 것을 ’반’이라 하니 말과 처소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효는 둔난의 세상을 당하여 비록 스스로 구제할 수는 없으나, 중을 거하고 바름을 얻어(居中得正) 위에 응원이 있으니 의를 잃지 않는 자이다. 그러나 초구에 핍박하고 가까우니, 음은 곧 양이 구하는 바요 유는 강이 능멸하는 바이다. 유한 자가 둔난의 때를 당하여 진실로 스스로 구제하기 어려운데, 또 강양에게 핍박받는 바가 되므로 어려움(難)이 되는 것이다. 가설하여 만약 도적의 어려움에 핍박받지 않았다면 가서 혼구(혼인)를 구했을 것이다. ’혼구’는 정응이다. ’도적’은 이치가 아니면서 이르는 자이다. 이효가 중정을 지켜 초구와 구차하게 합하지 않으므로 ‘시집가지 않는(不字)’ 것이다. 진실로 정고하여 바꾸지 않으면(貞固不易), 십 년에 이르러 둔난이 극해지면 반드시 통하므로, 이에 정응을 얻어 시집가서 아이를 기를(字育) 것이다. 여자와 같은 음유함으로도 진실로 능히 그 지조와 절개를 지키면 오래되어 반드시 통함을 얻는데, 하물며 군자가 도를 지켜 돌리지 않음(변절하지 않음)에 있어서랴? (문) ‘초구는 현명하고 강직한 사람인데 도적이 되어 남을 침범하고 핍박한다는 것은 어째서인가?’ (답) ‘이것은 스스로 이효가 유(柔)로서 강(剛)에 가까운 것에 의거하여 뜻을 삼은 것이지, 다시 초구의 덕이 어떠한가는 따지지 않은 것이다. 역(易)에서 뜻을 취함이 이와 같다.’ (정이천 『이천역전』둔괘 육이)
주자 『주역본의』
班,分布不進之貌。字,許嫁也。禮曰:「女子許嫁,笄而字。」六二陰柔中正,有應於上,而乘初剛,故為所難而邅囘不進。然初非為寇也,乃求與己為婚媾耳。但已守正,故不之許。至于十年,數窮理極,則妄求者去,正應者合,而可許矣。爻有此象,故因以戒占者。
’반(班)’은 나누어 펴져서 나아가지 않는 모양이다. ’자(字)’는 시집가기를 허락함이다. 예기(禮記)에 이르길 ’여자가 시집가기를 허락하면 비녀를 꽂고 자(이름)를 부른다’고 했다. 육이(음유중정)는 위에 응이 있으나, 초구의 강함 위에 탔으므로 어려움이 되어 맴돌며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초구는 (실제로) 도적이 되는 것이 아니요, 이에 자기와 더불어 혼인을 구하는 것일 뿐이다. 다만 자기가 바름을 지키므로(守正)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십 년에 이르면 수가 다하고 이치가 극해져서(數窮理極), 망령되이 구하던 자(초구)는 떠나고 정응하는 자(구오)와 합하여 가히 허락하게 된다. 효에 이런 상이 있으므로 인하여 점치는 자를 경계한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둔괘 육이)
或問:匪寇婚媾,程傳云「設匪逼於寇難,則往求於婚媾」,此說如何? 朱子曰:此四字文義不應必如此費力解。六二乘初九之剛,下為陽所逼。然非為寇也,乃來求己為婚媾耳。此婚媾與已皆正,指六二也。
(문) “’비구혼구’에 대해 정이천은 ’만약 도적의 난에 핍박받지 않았다면 가서 혼인을 구했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 설은 어떠합니까?” (답) 주희가 말하였다. “이 네 글자(비구혼구)의 문장의 뜻은 반드시 이와 같이(정이천처럼) 힘을 들여 해석할 필요가 없다. 육이가 초구의 강함 위에 탔으니 아래에 있는 양에게 핍박받는 바가 된다. 그러나 (초구는) 도적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와서 자기에게 혼인을 구하는 것일 뿐이다. (육이는) 이 혼구(청혼)와 자기가 모두 바르므로 육이를 가리킨 것이다(거절함).”
제가(諸家)
진운 풍씨가 말하였다.
初寇二,二欲應五而不得應,屯之象也。自己行藏,他人得而制之者,陰柔故也。
초구가 이효를 도적질(핍박)하고, 이효는 오효와 응하려 하나 응하지 못하니 이것이 둔(屯)의 상이다. 자기의 나아가고 물러남(行藏)을 다른 사람이 얻어서 제어하는 것은, 육이가 음유하기 때문이다. (진운 풍씨)
진재 서씨가 말하였다.
易之道,有已正而他爻取之以為邪者;有已凶而他爻得之以獲吉者。屯之初非不正也,而二近之則為寇;旅之上非不凶也,而五承之則有譽命。
역의 도에는 자기는 바른데 다른 효가 취하여 사악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고, 자기는 흉한데 다른 효가 그것을 얻어 길함을 얻는 경우가 있다. 둔괘의 초구는 바르지 않은 것이 아니나, 이효가 가까이 있다 보니 (이효 입장에서는) 도적이 된다. 여괘(旅)의 상구는 흉하지 않은 것이 아니나, 오효가 그것을 받드니 명예와 명이 있는 것이다. (진재 서씨)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屯如以時言,塞而未遽通也;邅如以遇屯之時者而言,囘而未遽進也。屯者,陰陽之始交。二與四陰居陰,初與五陽居陽。二應五,四應初,故皆曰婚媾,取陰陽之始交也。
’둔여(屯如)’는 때(時)로서 말하니 막혀서 급히 통하지 않는 것이요, ’전여(邅如)’는 둔의 때를 만난 자로서 말하니 배회하여 급히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둔은 음양의 시교(始交)이다. 이효와 사효는 음, 초효와 오효는 양이다. 이효는 오효와 응하고 사효는 초효와 응하므로 모두 ’혼구’라고 했으니, 음양의 처음 사귐을 취한 것이다.
柔乘剛,非常也。十年乃字,則應乎剛而反常矣。
또 말하였다. “유(柔)가 강(剛)을 타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非常). 십 년에 시집간다 함은 강(오효)에 응하여 떳떳함으로 돌아가는 것(反常)이다.” (운봉 호씨)
공씨(공영달)가 말하였다.
因六二之象,以明男女婚媾之事。其餘人事亦當法此。如有人偪近於難,遠有外應,未敢遽進。被近者所凌,經久之後,乃得相合。是知萬事皆象於此,非惟男女而已。諸爻男女之象義皆然。
육이의 상으로 인하여 남녀 혼인의 일을 밝혔다. 그 나머지 인사(人事)도 또한 마땅히 이것을 법받아야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난(難, 초구)에 핍박받고 가까이 있으며, 멀리 외부의 응원(오효)이 있어도 감히 급하게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가까운 자에게 능멸함을 당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서로 합하게 된다. 이로써 만사가 다 여기에 상징됨을 알 수 있으니, 비단 남녀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효의 남녀의 상과 뜻이 다 그러하다. (공씨, 공영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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