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상구는 덜어냄(損)이 끝에 다다른 자리다. 아랫사람의 것을 덜어 위를 채우던 손괘의 시련이 극에 이르면, 주역은 방향을 뒤집는다. “이제 덜지 마라, 오히려 보태주어라(弗損益之).” 더 이상 깎아낼 것이 없는 자리에 이르렀으니, 위에 선 사람은 자기 자원을 아래로 흘려보내는 은혜로운 지도자가 된다. 강한 재주(陽)를 가졌으되 부드러운 자리(陰位)에 있어, 이끌면서도 억누르지 않는 유연함을 갖춘 모습이다.
핵심은 “은혜를 베풀되 내 것이 축나지 않는다(惠而不費)“는 경지다. 물질을 뚝 떼어 주는 도움은 반드시 한계에 부딪힌다. 그러나 바른 원칙과 비전, 좋은 시스템과 마음을 나누는 도움은 내 뼈를 깎지 않고도 끝없이 번져 수많은 사람을 살린다. 주자는 이를 “사사로운 집안을 교화하여 공적인 국가로 만든다(化家爲國)“고 풀었다. 울타리(家)를 허무는 자가 도리어 천하를 품는다.
그리하여 천하의 사람들이 집을 버리고 모여드니(得臣无家), 멀고 가까움도 안팎의 구별도 없다. 다만 상구는 보탬의 극치에 거하여 교만해지기 쉬운 자리이므로, 경문은 “바르게 하면 길하다(貞吉)“는 경계를 함께 두었다. 크게 뜻을 얻을수록 그 뜻을 바르게 지켜야 한다.
삶에의 적용
오래 밑바닥을 견디며 마침내 정상에 오른 자리가 상구다. 여기서 “내가 고생해 얻은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며 움켜쥐면, 사람은 흩어지고 다시 가난해진다. 몸의 수련도 같다. 호흡이 끝까지 차올라 완벽한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더 모으려 억지로 쥐어짜면 오히려 무너진다. 기운이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시원하게 흘러넘치도록 열어젖히면, 나를 깎지 않고도 그 편안한 기운이 주위를 부드럽게 감싼다. 가장 가득 찬 자리에서 힘을 빼고 흘려보내는 것 — 그것이 덜지 않고 보태는 자의 자세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上九는 양강으로 損卦의 끝(損極)에 거하니 — 덜 만큼 다 덜어 더 덜 것이 없다. 만약 또 강함을 써 제 몸(물질)을 깎아 아래에 주면(用剛損削) 도리어 허물이 많아진다(其咎多). 그래서 弗損益之 — 제 몸은 덜지 않고 마음·뜻·방법(道)으로 아래를 보탠다. 九二의 弗損益之(中正을 안 덜어야 위를 도움)와 글자는 같으나 뜻이 다르니 — 九二는 中을 지켜서, 上九는 損極이라 몸 대신 道로 도움이라 한다.
은혜를 베풀되 제 것을 쓰지 않으니(惠而不費) — 물질로 도우면 한계가 있어(돈 주면 떨어지면 더 못 준다) 사랑이 한계에 부딪히나, 마음·뜻·방법(물질 이전)으로 도우면 한도 끝도 없어(无限) 그 은혜가 넓고 크다(惠之廣). 그러니 위에서 아래를 도울 때 마음·뜻으로 큰 도움을 주면 — 천하에 누가 복종하지 않으랴(天下孰不從服).
'신하를 얻되 집이 없다(得臣无家)' — 글자대로면 거지지만 거꾸로 봐야 한다: 신하(따르는 사람)를 얻음에 사사로운 집(私家)의 한계가 따로 없이, 온 천하가 다 나와 한 집(식구)이 된다(无遠近內外之限). 작은 집(私家)이 변해 국가가 되듯(化家爲國) — 작은 집에 살던 자가 임금이 되어 천하가 제 집이 된 것이니, 그 한계 없음에서 큰 것을 알 수 있다. (단 上九도 움직이면 망하니, 바름을 지킨 뒤라야 갈 바를 둠이 이롭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역대 주석
효사와 소상전
上九,弗損益之,无咎,貞吉,利有攸往,得臣无家。 상구는 덜어내지 않고 보태주니, 허물이 없고 바르게 하면 길하며,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롭고, 신하를 얻어 한 집안에 머물지 않는다(천하를 집으로 삼는다).
象曰:弗損益之,大得志也。 상(象)에 말하기를, 덜지 않고 보태줌은, 크게 뜻을 얻은 것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凡損之義有三:損己從人也,自損以益於人也,行損道以損於人也。損已從人,徙於義也;自損益人,及於物也;行損道以損於人,行其義也。各因其時取大者言之。四、五二爻,取損己從人;下體三爻,取自損以益人;損時之用,行損道以損天下之當損者也。上九則取不行其損為義。 무릇 손(損)의 뜻에는 세 가지가 있다. 자기를 덜어 남을 따르는 것이요, 스스로 덜어 남을 보태주는 것이요, 덜어냄의 도를 행하여 남의 것을 덜어내는 것이다. 4효와 5효는 ’자기를 덜어 남을 따름(겸손)’을 취했고, 하체의 3개 효는 ’스스로를 덜어 남을 보탬(희생)’을 취했으며, 손의 때의 쓰임은 ’천하의 마땅히 덜어내야 할 것을 덜어냄(개혁)’을 취했다. 상구는 곧 ’그 덜어냄을 행하지 않음(不行其損)’을 뜻으로 삼은 것이다.
九居損之終,損極而當變者也。以剛陽居上,若用剛以損削於下,非為上之道,其咎大矣。若不行其損,變而以剛陽之道益於下,則无咎而得其正且吉也。如是則宜有所往,往則有益矣。在上能不損其下而益之,天下孰不服從?從服之衆无有内外也。故曰得臣无家。得臣謂得人心歸服,无家謂无有逺近内外之限也。 9는 손의 끝에 거하니 덜어냄이 극에 달해 마땅히 변해야 할 자이다. 강양으로 위에 거하여 강함을 써 아랫사람을 깎아내린다면 윗사람 된 도리가 아니니 허물이 크다. 만약 그 덜어냄을 행하지 않고 변하여 강양의 도로 아랫사람을 보태준다면 허물이 없고 바름을 얻어 길하다. 위에 있으면서 아랫사람을 덜지 않고 도리어 보태주니 천하에 누가 복종하지 않겠는가. 따르고 복종하는 무리가 안팎의 구별이 없으므로 ’신하를 얻어 한 집안이 없다’고 한 것이다. ’집안이 없다’는 것은 멀고 가까움이나 안팎의 한계가 없음을 이른다.
(象傳)居上不損下而反益之,是君子大得行其志也。君子之志唯在益於人而已。上九曰弗損益之无咎而又曰貞吉者,上以剛居益之極,貞其所欠也,故戒之。 위에 거하여 아랫사람을 덜지 않고 도리어 보태주니 이는 군자가 크게 그 뜻을 행함을 얻은 것이다. 군자의 뜻은 오직 남을 보태주는 데 있을 뿐이다. 상구가 ’불손익지 무구’라 하고 또 ’정길’이라 한 것은, 상구가 강으로 보탬의 극치에 거하여 바름(貞)이 그에게 흠결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한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및 문답
上九當損下益上之時,居卦之上,受益之極,而欲自損以益人也。然居上而益下,有所謂恵而不費者,不待損己然後可以益人也。能如是則无咎,然亦必以正則吉,而利有所往。恵而不費,其恵廣矣。故又曰得臣无家。 상구는 ‘아래를 덜어 위를 보태는’ 때를 당하여 괘의 위에 거하니 보탬을 받는 극치에 있으면서 다시 스스로를 덜어 남을 보태주려는 자이다. 그러나 위에 거하면서 아래를 보태줌에 이른바 ’은혜를 베풀되 내 것이 소비되지 않는다(惠而不費)’는 것이 있으니, 자기를 덜어내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남을 보태줄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으나, 또한 반드시 바르게 하면 길하여 가는 바가 이롭다. 은혜를 베풀되 소비되지 않으니 그 은혜가 넓다. 그러므로 ’신하를 얻어 한 집안이 없다’고 한 것이다.
朱子曰:得臣无家,猶言化家為國相似。得臣有家,其所得也小矣。无家,則可見其大。 주자가 말하기를 “득신무가는 마치 ’사사로운 집안을 교화하여 공적인 국가로 만든다(化家爲國)’는 말과 비슷하다. 신하를 얻어 하나의 집안만 둔다면 그 얻는 바가 작다. 집이 없어져야 그 스케일이 큼을 볼 수 있다.”
或問:損卦下三爻皆是損已益人,四五兩爻是損己從人,上爻有為人上之象,不待損己而自有以益人。朱子曰:三爻无損己益人底意,只是盛到極處去不得,自是損了。四爻損其疾,只是損了那不好,了便自好。五爻是受益也,無損己從人底意。 혹자가 묻기를 “손괘 아래 세 효는 모두 나를 덜어 남을 보태고, 4·5효는 나를 덜어 남을 따르며, 상효는 윗사람이 되어 나를 덜지 않고도 자연히 남을 보탭니다.” 하니, 주자가 답하기를 “아래 세 효는 나를 덜어 남을 보탠다는 뜻이 없고, 단지 양이 극에 달해 더 갈 수 없으니 자연히 덜어진 것이다. 4효가 병을 덜어낸 것은 좋지 않은 것을 덜어낸 것이라 덜면 자연히 좋아진다. 5효는 남의 보탬을 받는 것이지 나를 덜어 남을 따른다는 뜻이 없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弗損益之,上與二辭同而意異。二當益上之時,不損其所守乃所以益上。上受益既至于極,則又當推以益下。然有不待損己而後可以益人者,所謂恵而不費是也。恵而不費,其恵也廣,故得臣无家,其得也大。 ’불손익지’는 상효와 2효의 말씀이 같으나 뜻이 다르다. 2효는 위를 보태주어야 할 때에 자신이 지키는 바를 덜지 않는 것이 곧 위를 보태주는 까닭이었다. 상효는 보탬을 받는 것이 극에 달했으므로 미루어 아래를 보태주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를 덜지 않고도 남을 보태줄 수 있으니 이른바 ’혜이불비’이다. 은혜가 넓으므로 신하를 얻되 집안의 한계가 없으니 그 얻음이 크다.
진식(陳埴)
勢自是如此。有人主出来也,只因這箇勢自往不得到這裏,方看做是如何。唯是聖人能順得這勢,盡得這道理。以下人不能識得損益之宜,便會錯了壊了,也是自立不得。 형세(勢)가 자연히 이와 같은 것이다. 인군이 나옴에 이 형세로 인해 갈 수 없는 데 이르러서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본다. 오직 성인만이 이 형세에 순응하고 도리를 다 얻는다. 그 아래 사람들은 손익의 마땅함을 알지 못해 틀리거나 망쳐버리니 스스로 설 수 없다.
절재 채씨(節齋蔡氏) — 손괘 육효 총정리
損之為義損下益上,聖人不得已用之。故卦辭必曰有孚。爻辭初曰酌損,二上皆曰弗損,四但損其疾而已,五則无損而大有益,唯三當可損之時耳。損兼言益,益不兼言損,意亦可見。 손의 뜻은 아래를 덜어 위를 보태는 것이나, 성인이 부득이하게 그것을 쓴다. 그러므로 괘사에 반드시 ’유부(진실한 믿음)’를 말했다. 효사에서 초효는 ‘짐작하여 덜라’, 2효와 상효는 모두 ‘덜지 마라’, 4효는 ‘그 병을 덜어낼 뿐’, 5효는 덜어냄 없이 크게 보탬이 있고, 오직 3효만이 마땅히 덜어낼 수 있는 때이다. 손괘는 보탬을 겸하여 말하고 익괘는 덜어냄을 겸하지 않았으니 그 뜻을 알 수 있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 손괘 육효 총정리
損者,損下乾之陽以益上坤之隂也。合六爻觀之,損在下則益在上矣。其在下卦,初爻位俱剛可損也,故曰酌損之;二處柔得中不可損矣,故曰弗損益之;三則有餘於陽,當損其一以奉上,故曰損一人。此三爻皆知損者也。 손은 아래 건(乾)의 양을 덜어 위 곤(坤)의 음에 보태는 것이다. 육효를 합하여 보면 덜어냄은 아래에, 보탬은 위에 있다. 하괘에서 초효는 효와 자리가 모두 강하여 덜 수 있으므로 ‘짐작하여 덜라’, 2효는 유에 처하고 중을 얻어 덜 수 없으므로 ‘자신을 덜지 않고 보탠다’, 3효는 양이 남음이 있어 하나를 덜어 위를 받들므로 ’한 사람을 던다’고 하였다. 이 세 효는 모두 덜어내는 자이다.
其在上卦,四隂虚賴初之陽以為益,故曰損其疾;五受二之益而又得上之益,故曰或益之;上與三為往来之爻,既得三之益,不待損人以益己,故曰弗損益。此三爻則處損而得益者也。 상괘에서 4효는 음이 비어 초효의 양에 의지해 보탬을 삼으므로 ‘그 병을 덜어낸다’, 5효는 2효의 보탬을 받고 또 상효의 보탬을 얻으므로 ‘혹 보태준다’, 상효는 3효와 왕래하는 효이니 이미 3효의 보탬을 얻어 남을 덜어 자기를 보태기를 기다리지 않으므로 ’스스로를 덜지 않고 보탠다’고 하였다. 이 세 효는 손에 처하여 보탬을 얻는 자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