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택손(山澤損)의 첫 자리다. 초구는 양효가 양의 자리에 바르게 앉은, 힘이 넘치고 강건한 실무자다. 하던 일이 있어도 위기에 처한 윗사람(육사)이 도움을 청하면, 내 일을 멈추고 곧장 달려가 돕는다. 아래를 덜어 위에 보태는(損下益上) 헌신의 첫 모범이다.
그러나 이 효의 진짜 가르침은 두 번째 구절에 있다. “짐작하여 덜어내라(酌損之).” 술잔에 술을 따르듯, 너무 많이 따르면 넘치고 너무 적게 따르면 부족하다. 도움에도 헤아림이 있어야 한다. 내가 가진 힘을 남김없이 다 내어주면 나도 쓰러지고, 내 근본이 무너지면 다음에 다시 도울 길마저 사라진다. 운봉 호씨의 말대로, 상대가 받아들일 만큼을 헤아리고 내 그릇에 따라 멈추는 것(量其所受, 隨器而止), 그것이 ’작(酌)’의 뜻이다.
정이천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도운 일이 끝났으면 빨리 그 자리를 떠나 공로에 머물지 말라. 만약 성공의 아름다움을 제 것으로 누리려 하면, 그것은 이미 자기를 덜어 위를 보태는 헌신이 아니라 거래가 된다. 도움은 생색을 남기지 않을 때 비로소 온전하다.
삶에의 적용
무리한 헌신은 미덕이 아니라 자해가 될 수 있다. 남을 위해 힘을 쓸 때일수록 내 몸의 배터리 잔량을 살펴야 한다. 대련에서 상대가 내 한쪽 팔을 꺾어 올 때, 다른 손이 재빨리 지원을 가되 몸 전체가 앞으로 쏠리면 중심(단전)을 잃고 그대로 엎어진다. 중심축은 땅에 박아둔 채 팔의 관절만 뻗어 돕는 것 — 나를 잃지 않는 도움이 가장 오래가는 도움이다. 달려가는 속도(遄往)와 멈출 줄 아는 절도(酌損), 이 둘을 한 몸에 지닐 때 관계도 몸도 롱런한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已事遄往 无咎' — 이미 한 일(已事, 九四를 도운 일)이 끝났거든 빨리 옮겨가야(遄往) 허물이 없다. 한 자리 얻으려고, 덕 보려고 머뭇거리면 거래(이해관계)가 되어 — 못 받으면 배신하고 비밀을 터뜨려 끝내 제가 징역을 진다. 그래서 성공 자리 아래엔 오래 머물지 말라(成功之下不可久處) 하며 (…) 남을 돕거든 생색을 내지 말라 한다.
'작(酌)'은 술잔에 술을 따름이니 — 너무 따르면 넘치고(過) 적게 따르면 부족하다(不及). 그래서 술잔 따르듯 때와 분수를 맞춰 덜라(酌損·斟酌)는 것이다 — 차비를 10만 원 줄 자리에 20·30만 원을 주면 도리어 생색·부담이 되어 옳지 못하다. 그 '짐작'은 그릇을 헤아림이라 한다 — 내 그릇(역량)이 얼마며 상대의 그릇이 얼마인가, 도움을 줄 만한가를 헤아려 —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한다.
初九는 양강한 능력으로 九四와 상응하는데, 九四는 음유라 무능해 임금(五효)을 못 도우니 — 初九의 힘을 빌린다(賴初之益). 아래(初九)를 덜어 위(九四)에 보탬(損下益上)이다. 그러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도울 땐 마땅히 제 몸을 덜어 손해를 보되 그것을 제 공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損己而不以爲功).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효사와 소상전
初九, 已事遄往, 无咎, 酌損之.
초구는 하던 일을 멈추고 빨리 가면 허물이 없으리니, 짐작하여(알맞게 헤아려) 덜어내야 한다. (遄의 발음은 시와 전의 반절, 빠를 천이다.)
象曰, 已事遄往, 尚合志也.
상에 이르기를, 일을 멈추고 빨리 감은 위(상사)와 뜻을 합하는 것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損之義, 損剛益柔, 損下益上也. 初以陽剛應於四, 四以隂柔居上位, 賴初之益者也. 下之益上, 當損已而不自以為功. 所益於上者, 事既已, 則速去之, 不居其功, 乃无咎也.
손의 뜻은 강을 덜어 유를 보태고, 아래를 덜어 위를 보태는 것이다. 초효는 양강으로 4효에 응하니, 4효는 음유로서 상위에 거하여 초효의 보탬에 의지하는 자이다. 아래가 위를 보탬에, 마땅히 자신을 덜어내되 스스로 공으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 윗사람에게 보태준 일이 이미 끝났으면 곧 빨리 떠나 그 공로에 머물지 않아야 마침내 허물이 없다.
若享其成功之美, 非損已益上也, 於為下之道為有咎矣. 四之隂柔賴初者也, 故聽於初.
만약 그 성공의 아름다움을 누리려 한다면 자기를 덜어 위를 보태는 것이 아니니, 아랫사람 된 도리에 허물이 된다. 4효의 음유는 초효에게 의지하므로 초효의 말을 듣는다.
初當酌度其宜而損己以益之, 過與不及皆不可也.
초효는 마땅히 그 마땅함을 짐작하고 헤아려 자기를 덜어 그를 보태야 하니,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이 모두 불가하다.
尚, 上也, 時之所崇用為尚. 初之所尚者, 與上合志也. 四賴於初, 初益於四, 與上合志也.
상은 위라는 뜻이니, 그 시대가 숭상하여 쓰는 바를 ’상’이라 한다. 초효가 숭상하는 바는 윗사람과 뜻을 합하는 것이다. 4효는 초효에게 의지하고 초효는 4효를 보태주니, 윗사람과 뜻을 합하는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와 문답
本義, 初九當損下益上之時, 上應六四之隂, 輟所為之事而速往以益之, 无咎之道也. 故其象占如此. 然居下而益上, 亦當斟酌其淺深也.
초구는 아래를 덜어 위를 보태는 때를 당하여 위로 육사의 음과 응하니, 하던 일을 그치고 속히 가서 그를 보태주는 것이 허물이 없는 도이다. 그러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그러나 아래에 거하면서 위를 보탬에, 또한 마땅히 그 얕고 깊음을 짐작해야 한다.
朱子曰, 酌損之, 在損之初, 下猶可以斟酌也. 問, 損卦二陽皆能益隂, 而二上二爻則弗損益之, 初則曰酌損之, 何邪. 曰, 這一爻難解, 只得用伊川說.
주자가 말하기를 “’짐작하여 덜어낸다’는 것은 덜어냄의 초기이므로, 아랫사람이 오히려 얼마나 줄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묻기를 “손괘의 두 양(1·2효)이 모두 능히 음을 보탤 수 있는데, 2효와 상효는 ‘덜지 말고 보태라’ 하고 초효는 ‘짐작하여 덜라’ 하니 어째서입니까?” 하니, 답하기를 “이 효는 해석하기 어려워, 단지 이천의 학설을 쓸 수밖에 없다.”
又云, 易解得處少, 難解處多. 今且恁地說去, 到那占時, 又自别消詳, 有應處難豫為定說也.
또 이르기를 “주역은 해석할 수 있는 곳은 적고 어려운 곳이 많다. 지금 우선 이렇게 설하고 넘어가지만, 그 점을 칠 때에 이르면 또 스스로 따로 헤아려 살펴야 하니, 대응하는 곳이 있어 미리 정해진 학설로 삼기 어렵다.”
제가(諸家)
臨川吴氏曰, 損之時皆當以下陽益上隂. 已, 止也. 事, 所作為之事也. 陽動喜作為, 初在下, 當止其所作為之事而速往以益四也. 居下者不當有為, 以其有餘之才補益其上, 已損而上益, 此處下之道也. 故无咎.
임천 오씨가 말하였다. 손의 때에는 모두 마땅히 아래의 양으로 위의 음을 보태야 한다. 이(已)는 그친다는 뜻이요, 사(事)는 하는 일이다. 양은 움직여 일하기를 좋아하니, 초효가 아래에 있으면서 마땅히 하던 일을 멈추고 빨리 가서 4효를 보태야 한다. 아래에 거하는 자는 마땅히 사사로이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고, 그 남는 재주로 윗사람을 보충해 자기를 덜어 위를 보태니, 이것이 아래에 처하는 도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廣平㳺氏曰, 損下而益上者, 或失其節則後難繼, 故必酌損之.
광평 유씨가 말하였다. 아래를 덜어 위를 보태는 것은, 혹 그 절도를 잃으면 나중에 잇기가 어려우므로 반드시 짐작하여 덜어내야 한다.
廣平游氏曰, 四之志欲損其疾, 而初遄往, 使遄有喜焉, 故曰尚合志也.
광평 유씨가 (소상에 대해) 말하였다. 4효의 뜻이 그 병(유약함)을 덜고자 하는데 초효가 빨리 가서 하여금 빨리 기쁨이 있게 하였으므로 ’위로 뜻을 합한다’고 한 것이다.
雲峰胡氏曰, 初九以剛居剛而當損之初, 唯其以剛居剛, 則為之過, 故可自已其所為而速往以益四. 唯其當損之初, 則又未可自損之過, 故當酌其淺深之宜而不自傷其本. 量其所受, 隨器而止, 酌之義也.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초구는 강으로서 강자리에 거하여 덜어냄의 초기에 해당한다. 강으로서 강자리에 거했기에 행하는 바가 지나칠 수 있으므로, 스스로 하던 일을 멈추고 빨리 가서 4효를 보태야 한다. 또 덜어냄의 초기이기에 스스로 덜어냄을 지나치게 해서는 안 되므로, 마땅히 그 얕고 깊음의 마땅함을 짐작하여 스스로 그 근본을 상하지 않게 해야 한다. 상대가 받아들이는 바를 헤아리고 그릇에 따라 그치는 것이 ’작(酌)’의 뜻이다.
출전: 경문·소상전과 주석은 주역전의대전(정이천 『이천역전』, 주자 『주역본의』, 임천 오씨·광평 유씨·운봉 호씨 제가 잔주)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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