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명이(明夷)는 밝음(離)이 땅(坤) 아래로 들어간 괘, 곧 해가 육지에 덮여 깜깜한 밤이 된 어둠의 시대다. 밝은 것이 상처를 입어(明傷) 어둠이 되었으니 ’이(夷)’가 곧 상함이다. 초구는 그 어둠의 맨 첫머리, 하괘 리(離)의 가장 아래에 놓인 밝고 강한 군자다. 양효가 양의 자리에 있어 똑똑하고 곧으나, 위로는 폭군(상육)의 어둠이 내리덮여 그 밝음을 상하게 하니 뜻을 펼칠 수가 없다. 날아오르려는데 날개가 꺾여 늘어진 새(明夷于飛, 垂其翼) — 그것이 이 효의 상이다.
정이천은 이 효를 ’기미를 아는 자(知幾)’의 자리로 읽는다. 군자는 밝게 비추어 사물의 미세한 조짐을 보므로, 상함의 실마리가 아직 겉으로 드러나기 전에 이미 그것을 알아챈다. 그래서 녹봉과 지위를 버리고 물러나 숨으니(君子于行), 사흘을 굶주릴 만큼 곤궁해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일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토록 험난하게 처신하는 것은 ’기미를 보는 밝음(見幾之明)’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 까닭을 모르니 이르는 곳마다 “아직 아무 일도 없는데 왜 저리 서두르느냐”며 비난한다(主人有言). 그러나 군자는 세속의 의심 때문에 그 떠남을 지체하지 않는다. 뭇사람이 위험을 다 알아챌 때까지 기다리면 이미 화가 몸에 미쳐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이천은 당고(黨錮)의 화가 일어나기 전 홀로 토굴에 숨어 ’미친 선비’라 손가락질받으면서도 끝내 대숙청을 면한 원홍(袁閎), 초나라를 미리 떠나 목숨을 건진 목생(穆生)의 고사를 든다.
주자 또한 굶주리며 떠나 이르는 곳마다 뜻이 맞지 않는 것은 이 시기의 의리상 당연한 것이라 피할 수 없다고 하였다. 제가의 풀이는 이 결단의 무게를 더한다. 건안 구씨는 “안 먹을 수는 있어도 안 떠날 수는 없다”며 떠나는 것이 먹는 것보다 무겁다고 하였고, 운봉 호씨는 나아가고 물러남의 의리는 모두 그 ’처음(初)’에 결단해야 하니 일찍 끊어 내는 것은 밝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절재 채씨는 초구가 폭군(상효)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도리어 상함이 얕다고 짚는다 — 먼저 알고 먼저 물러났기에 화를 면한 것이다. 이 효는 지난 일을 회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변화의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 묻는다. 조짐이 뼈를 때릴 때 남의 시선을 걷어 내고 먼저 움직일 수 있는가.
삶에의 적용
내가 몸담은 자리에 미세한 균열이 감지되거든, 세상이 모두 “괜찮다”고 말할 때 홀로 느낀 그 직감을 가볍게 넘기지 말라. 물러남은 겁이 아니라 밝음이다. 주변의 비웃음에 얼굴이 붉어지고 분이 치민다면 그 에고가 나를 붙잡아 늦게 만든다. 모멸을 견디고, 사흘 굶주림 같은 손해를 받아들이고, 몸을 납작하게 낮추어 가장 가까운 자리로 먼저 피하는 것 — 그 한 박자 빠른 결단이 암흑기를 통과하는 힘이다. 수련도 다르지 않다. 상대의 주먹이 코앞에 닿기 전, 어깨 근육이 미세하게 수축하는 그 찰나를 피부로 읽어 중심을 뒤로 빼는 사람이 끝까지 남는다. 조짐을 몸으로 듣고, 폼이 조금 구겨지더라도 먼저 물러설 줄 아는 몸을 길러라.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初九는 어둠의 때(明夷)에 날아가려는데(于飛) 날개가 꺾여 드리워졌다(垂其翼) — 날아가야 하는데 날개가 부러진 것이다. (…) 꺾인 날개는, 사람으로 치면 다리(걸어갈 수단)에 상처가 난 것이다.
君子于行(군자가 떠나감)에 三日不食(3일을 굶음) — 너무 급해 3일이나 밥을 굶고 정신없이 도망간다. 6효(暗君)에서 제일 먼 1효(나그네)가, 남이 알기 전에(남 모를 때) 조급히 떠나는 것이다. (…) 有攸往(갈 바를 둠)에 主人有言(주인이 말이 있음) — 하숙 주인이 '저 사람 미쳤나, 갈 거면 밥이나 먹고 가지 3일을 굶고 가나' 한다.
君子는 희미한 조짐(幾)을 남보다 먼저 본다(君子明照·獨見). 내 마음에는 벌써 상처(조짐)가 왔는데 사건은 아직 안 드러났다 — '요때다' 하고 미리 떠난다(見幾而作). 남이 알면 벌써 늦어 도망 못 간다. 아침에 해 뜨는 것만 봐도 하루를 알고 며칠을 알듯, 군자는 홀로 미리 본다. (…) 남을 의식하지 마라 — 의식하면 때가 늦는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풀이
경문
初九:明夷于飛,垂其翼。君子于行,三日不食。有攸往,主人有言。
초구는 밝음이 상하여 날아감에 그 날개를 늘어뜨린다. 군자가 길을 떠남에 사흘을 먹지 못한다. 가는 바가 있으면 주인이 하는 말(비난)이 있다.
象曰:君子于行,義不食也。
상전에 말하였다. 군자가 길을 떠남은, (그 자리에 남아 녹봉을) 먹지 않는 것이 의리이기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효사)
傳:初九明體而居明夷之初,見傷之始也。九陽明上升者也,故取飛象。昏暗在上,傷陽之明,使不得上進,是于飛而傷其翼也。翼見傷故垂朶,凡小人之害君子,害其所以行者。
전(傳)에 이르기를: 초구는 밝은 본체(離)로 명이(明夷)의 초입에 거하니, 상함을 당하는 시작이다. 9(양)는 밝게 위로 오르는 자이므로 ’나는 상(飛象)’을 취했다. 혼미하고 어두운 자(상육)가 위에 있어 양의 밝음을 상하게 하여 위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니, 이는 날아가려다 그 날개가 다친 것이다. 날개가 상했으므로 늘어뜨리는 것이다. 무릇 소인이 군자를 해침은 ’그가 행하는 바(수단·날개)’를 해치는 것이다.
君子明照,見事之微,雖始有見傷之端未顯也,君子則能見之矣。故行去避之。君子于行,謂去其禄位而退藏也。三日不食,言困窮之極也。事未顯而處甚艱,非見幾之明不能也。夫知幾者君子之獨見,非衆人所能識也。
군자는 밝게 비추어 사물의 미세함(微)을 보니, 비록 처음 상함의 실마리가 아직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군자는 능히 그것을 본다. 그러므로 행하여 떠나서 이를 피하는 것이다. ’군자우행(군자가 떠남)’은 그 녹봉과 지위를 버리고 물러나 숨는 것(退藏)을 이른다. ’사흘을 먹지 못한다’는 것은 곤궁함이 극에 달했음을 말한다. 일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는데 대처함이 심히 험난하니, ’기미를 보는 밝음(見幾之明)’이 아니면 능히 할 수 없다. 무릇 기미를 안다는 것(知幾)은 군자만의 독보적인 소견(獨見)이요, 뭇사람들이 능히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
故明夷之始,其見傷未顯而去之,則世俗孰不疑怪?故有所往適,則主人有言也。然君子不以世俗之見怪而遲疑其行也。若俟衆人盡識,則傷己及而不能去矣。
그러므로 명이가 시작될 때 상함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는데 떠나버리면, 세속 사람들이 누군들 의심하고 괴상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도망가서)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하는 말(비난)’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군자는 세속 사람들이 괴상하게 여긴다고 해서 그 떠남을 지체하거나 망설이지 않는다. 만약 뭇사람들이 (위험을) 다 알 때까지 기다린다면, 상함이 이미 자기에게 미쳐 능히 떠날 수 없게 될 것이다.
或曰:傷至於垂翼,傷己明矣,何得衆人猶未識也?曰:初傷之始也。云垂其翼,謂傷其所以飛爾,其事則未顯也。君子見幾,故亟去之,世俗之人未能見也,故異而非之。如穆生之去楚,申公白公且非之,况世俗之人乎?但譏其責小禮,而不知穆生之去,避胥靡之禍也。當其言曰「不去,楚人將鉗我於市」,雖二儒者亦以為過甚之言也。又如袁閎於黨事未起之前,名德之士方鋒起,而獨濳身土室,故人以為狂生。卒免黨錮之禍,所往而人有言,胡足怪也。
혹자가 묻기를 “상함이 날개를 늘어뜨리는 데 이르렀다면 상함이 이미 분명한데, 어찌 뭇사람들은 오히려 알지 못합니까?” 하니, 답하기를 “초효는 상함의 시작이다. ’날개를 늘어뜨린다’는 것은 단지 그 날아가는 수단을 다쳤다는 것일 뿐, 그 일(재앙) 자체는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군자는 기미를 보기 때문에 급히 떠나고, 세속의 사람은 능히 보지 못하므로 이상하게 여겨 비난하는 것이다. 마치 한나라 초, 목생(穆生)이 초(楚)왕 원(戊)에게서 떠날 때 같은 학자인 신공과 백공조차 그를 비난했거늘, 하물며 세속의 사람들이야 오죽했겠는가? 사람들은 단지 목생이 ’작은 예의(연회 때 단술을 올리지 않음)’를 따진다고만 비웃었지, 목생이 떠난 것이 ’형벌받는 화(胥靡之禍)’를 피하기 위함이었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당시에 목생이 ’떠나지 않으면 초왕이 장차 시장 저잣거리에서 내 목에 칼을 씌울 것이다’라고 했을 때, 두 선비(신공·백공)조차 이를 지나친 말이라고 여겼다. 또 후한 때 원홍(袁閎)이 당인(黨人)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름 높고 덕 있는 선비들이 바야흐로 벌떼처럼 일어날 때 홀로 흙벽 굴속(토실)에 몸을 숨기니 사람들이 그를 ’미친 선비(狂生)’라 여겼다. 그러나 마침내 당고의 화(黨錮之禍, 지식인 대숙청)를 면했으니,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비난하는 말이 있는 것이 어찌 괴이할 것이 있겠는가!”
정이천 『이천역전』(상전)
傳:君子遯藏而困窮,義當然也。唯義之當然,故安處而无悶,雖不食可也。
군자가 물러나 숨어서 곤궁해지는 것은 의리상 당연한 것이다. 오직 의리상 당연하므로 편안히 처하여 번민함이 없으니(安處而无悶), 비록 굶주리더라도 가한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
本義:飛而垂翼,見傷之象。占者行而不食,所如不合,時義當然,不得而避也。
날아가는데 날개를 늘어뜨림은 상함을 당한 상이다. 점치는 자가 길을 떠나 굶주리고, 이르는 곳마다 뜻이 맞지 않는 것은 이 시기의 의리상 당연한 것이라 가히 피할 수 없는 것이다.
象傳本義:唯義所在,不食可也。
(상전 본의) 오직 의리가 있는 곳이니, (녹봉을) 먹지 않는 것이 가하다.
제가 — 동계 왕씨 (『주역전의대전』수록)
童溪王氏曰:君子于行,謂去其禄位也。三日不食,謂義不食其禄也。
동계 왕씨가 말하였다. ’군자가 길을 떠남’은 그 녹봉과 벼슬자리를 버리는 것을 이른다. ’사흘을 먹지 못한다’는 것은 의리상 그 (폭군의) 녹봉을 먹지 않는 것을 이른다.
제가 — 운봉 호씨 (『주역전의대전』수록)
雲峰胡氏曰:君子去就之義,皆於其初占之。賁之初不可乘而不乘,義也。明夷之初不當食而不食,亦義也。卦皆下離,决去就之義於早者,非明不能也。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군자의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남의 의리는 모두 그 ’처음(初)’에 점친다. 비(賁)괘의 초효는 수레를 탈 수 있으나 타지 않는 것이 의리이고, 명이의 초효는 마땅히 먹을 수 있으나 먹지 않는 것이 또한 의리이다. 두 괘 모두 하괘가 리(離, 밝음)이니, 나아가고 물러남의 의리를 일찍(早) 결단하는 것은 밝음(명철함)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제가 — 건안 구씨 (『주역전의대전』수록)
建安丘氏曰:明夷暗主在上,初體離明去上最遠,見傷即避,有飛而垂翼之象。垂翼不敢上進,戢身避禍也。君子知幾,義當速去,葢可以不食而不可以不去,去重於食故也。主人主我者也,謂初與四為應也。有言謂訝其去之早也。
건안 구씨가 말하였다. 명이는 암군(상육)이 위에 있고 초효는 리(離)의 밝은 체로서 위에 가장 멀리 있으니, 상함을 보고 즉시 피하는 것이 ‘날아감에 날개를 늘어뜨리는’ 상이다. 날개를 늘어뜨리고 감히 위로 나아가지 못함은 몸을 숨겨 화를 피하는 것이다. 군자가 기미를 알아(知幾) 의리상 마땅히 속히 떠나야 하니, 대개 ’안 먹을 수는 있어도 안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니 떠나는 것이 먹는 것보다 중하기 때문이다. ’주인’은 나를 주관하는 자이니 초효가 4효와 응함이다. ’말이 있다(비난함)’는 것은 그가 떠나는 것이 너무 이른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것이다.
제가 — 절재 채씨 (『주역전의대전』수록)
節齋蔡氏曰:曰飛、曰行、曰往,皆進之謂也。曰垂翼、曰不食、曰有言,皆傷之謂也。言當明夷之初,進而有傷也。取上獨遠,故傷者淺。
절재 채씨가 말하였다. 난다·간다·나아간다고 한 것은 모두 ’나아감’을 이른 것이고, 날개를 늘어뜨린다·굶는다·비난을 듣는다고 한 것은 모두 ’상함’을 이른 것이다. 명이의 초기에 나아가면 상함이 있다는 말이다. 상효(암군)에게서 유독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그 상함이 얕은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