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水蒙 · 64괘 사전

초육(初六) — 發蒙

初六:發蒙,利用刑人,用說桎梏。以往吝。
법을 바로잡음초효, 음유가 아래에 거함 (시작·미천)관계에서 이로움을 얻음변화/전환

풀이

산수몽(蒙)은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괘다. 산 아래 샘이 솟되 아직 갈 길을 찾지 못한 물처럼, 배움의 첫걸음에 놓인 자리다. 그 여섯 효 가운데 초육은 맨 아래, 가장 어리고 미천한 자리에 놓인 음효다. 말로 타일러도 알아듣지 못하고 이끌어도 자꾸 어긋나는, 무지몽매함이 가장 짙은 상태다. 이런 사람에게는 부드러운 말보다 먼저 분명한 규율과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이롭다(利用刑人). 두려움을 알아야 비로소 마음을 다잡기 때문이다.

그러나 효사는 곧바로 방향을 튼다. 형벌은 족쇄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벗겨주기 위함이다(用說桎梏). ’설(說)’은 벗을 탈(脫)이니, 매를 드는 목적은 그 사람을 묶어두는 데 있지 않고 그를 옥죄던 어리석음의 족쇄를 풀어주는 데 있다. 혼을 냈으면 풀어주어야 한다. 만약 이 이치를 잊고 엄하게 다그치기만 하며 계속 나아가면(以往), 상대는 마음을 고치는 대신 반항하거나 기가 죽고, 결국 부끄러운 지경에 이른다(吝). 벌이 목적이 되는 순간, 가르침은 무너진다.

공자는 소상전에서 이를 법을 바로잡는 것(以正法)이라 풀었다. 처음에 한계를 분명히 세우는 것은 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딛고 설 바른 기준을 세워주기 위해서다. 단호함과 너그러움은 대립하지 않는다. 조일 때 조이고 풀 때 푸는 그 절도(節度) 안에 참된 스승의 도량이 있다.

삶에의 적용

자신을 다스릴 때든 남을 이끌 때든, 잘못된 습관과 자세를 고치는 첫 순간에는 단호한 자극이 필요하다. 어긋난 동작에는 분명한 교정을, 무너진 리듬에는 엄격한 규율을 주어라. 그러나 교정이 이루어진 다음에도 긴장과 질책을 놓지 않는 것은 하수다. 몸으로 말하자면, 힘을 주어 바로잡았으면 곧 힘을 빼야(放鬆) 한다. 계속 조이고만 있으면 나도 굳고 상대의 반발력만 커진다. 오늘 자신을 나무랐다면, 나무란 뒤에는 반드시 스스로를 풀어주라. 그 풀어줌까지가 하나의 가르침이다.

통찰

규율의 목적은 묶는 것이 아니라 푸는 것이다. 매를 드는 손과 매를 거두는 손이 하나일 때, 비로소 사람은 두려움을 넘어 스스로 바로 선다. 조임과 풀림의 절도를 아는 사람만이 남을, 그리고 자신을 가르칠 수 있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풀이

경문

初六:發蒙,利用刑人,用說桎梏。以往吝。

초육은 몽매함을 깨우치니, 형벌을 쓰는 것이 이로우며, (형벌로써) 족쇄와 수갑을 벗겨준다. (형벌로만) 쭉 계속 가면 부끄럽다.

象曰:利用刑人,以正法也。

상전에 말하였다. ’형벌을 쓰는 것이 이로움’은 법을 바로잡기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初以隂暗居下,下民之䝉也。爻言發之之道。下民之䝉,當明刑禁以示之,使之知畏,然後從而教導之。自古聖王為治,設刑罰以齊其衆,明教化以善其俗。刑罰立而後教化行。雖聖人尚徳而不尚刑,未嘗偏廢也。故為政之始,立法居先。治䝉之初,威之以刑者,所以說去其昏䝉之桎梏。桎梏,謂拘束也。不去其昏䝉之桎梏,則善教无由而入。既以刑禁率之,雖使心未能喻,亦當畏威以從,不敢肆其昏䝉之欲;然後漸能知善道而革其非心,則可以移風易俗矣。茍専用刑以為治,則䝉雖畏而終不能發,茍免而无恥,治化不可得而成矣。故以徃則可吝。

전(傳)에 말하였다. “초육은 음암(陰暗)함으로써 아래에 거하니 하민(下民)의 몽매함이다. 이 효는 그것을 깨우쳐주는 도를 말했다. 하민의 몽매함은 마땅히 형벌과 금지(刑禁)를 밝혀서 보여주어 그들로 하여금 두려워할 줄 알게 하고, 그런 뒤에 따라서 교도(教導)해야 한다. 예로부터 성왕(聖王)이 다스림을 할 때, 형벌을 베풀어 그 무리를 가지런히 하고, 교화를 밝혀 그 풍속을 선하게 하였다. 형벌이 선 뒤에 교화가 행해진다. 비록 성인이 덕을 숭상하고 형벌을 숭상하지 않으나, 일찍이 치우쳐서 (형벌을) 폐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정치를 하는 처음에는 법을 세우는 것이 우선한다. 몽을 다스리는 초기에 형벌로써 위엄을 보이는 것은, 그 혼몽(昏蒙)한 질곡(족쇄와 수갑)을 벗겨서 제거하기 위함이다. ’질곡’은 구속함을 이른다. 그 혼몽한 질곡을 제거하지 않으면 좋은 가르침이 말미암아서 들어갈 수 없다. 이미 형벌과 금지로써 통솔하면, 비록 마음으로 능히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또한 마땅히 위엄을 두려워하여 따르고 감히 그 혼몽한 욕심을 방자하게 하지 못할 것이며, 그런 뒤에 점차 능히 선한 도를 알아서 그 그른 마음을 고치면 가히 풍속을 옮기고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오로지 형벌만 써서 다스림을 삼으면, 몽매한 자가 비록 두려워하나 끝내 능히 계발되지 못하고, 구차하게 면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이 없게 되어, 다스림과 교화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 그렇게) 가면 가히 부끄러움이 될 것이다.”

治䝉之始,立其防限,明其罪討,正其法也。使之由之,漸至於化也。或疑䝉之初,遽用刑人,无乃不教而誅乎?不知立法制刑,乃所以教也。葢後之論刑者,不復知教化在其中矣。

(상전 해설) “몽을 다스리는 시작에, 그 막는 한계를 세우고 그 죄와 토벌을 밝히는 것이 그 법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말미암게 하여(따르게 하여) 점차 교화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혹자가 의심하여 ’몽매한 초기에 갑자기 형벌을 쓰는 것은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나, 법을 세우고 형벌을 제정하는 것이 바로 가르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대개 후세에 형벌을 논하는 자들은 다시는 교화가 그 가운데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주자 『주역본의』

以隂居下,䝉之甚也。占者遇此,當發其䝉。然發之之道,當痛懲而暫舎之,以觀其後。若遂徃而不舎,則致羞吝矣。戒占者當如是也。

본의에 말하였다. “음으로서 아래에 거하니 몽매함이 심한 것이다. 점치는 자가 이를 만나면 마땅히 그 몽매함을 깨우쳐야 한다. 그러나 깨우치는 도는 마땅히 아프게 징계하되 잠시 놓아두어서 그 뒤를 관찰해야 한다. 만약 드디어 계속 가서 놓아주지 않으면, 곧 부끄러움과 인색함에 이를 것이다. 점치는 자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䝉之初,法不可不正。懲戒所以正法也。

(상전 해설) “몽의 초기에는 법이 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 징계하는 것이 법을 바로잡는 까닭이다.”

朱子曰:䝉之義,或自家是䝉得他人,或他人是䝉得自家。

주희가 말하였다. “몽의 뜻은 혹은 내 자신이 타인에게 몽매함을 얻은 것(배움)일 수도 있고, 혹은 타인이 나에게 몽매함을 얻은 것(가르침)일 수도 있다.”

利用刑人,用説桎梏。粗説時,如今人打人棒也,須與脱了那枷方可,一向枷他不得。若一向枷他,便是以徃吝。這只是説治䝉者當寛慢,盖法當如此。

또 말하였다. “‘이용형인 용설질곡’. 알기 쉽게 말하면, 지금 사람이 남에게 몽둥이질을 하더라도 모름지기 그 칼(枷, 형구)을 벗겨주어야 가한 것과 같으니, 한결같이 그에게 칼을 채워두면 안 된다. 만약 한결같이 칼을 채워두면 이것이 곧 ’이왕린’이다. 이것은 단지 몽을 다스리는 자는 마땅히 너그럽고 느긋해야 함을 말한 것이니, 대개 법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제가 — 산 양씨 (『주역전의대전』수록)

䝉无知也,告之而弗喻,引之而屢違,非威之以刑,莫能從也。故䝉之初,利用刑人。記曰「榎椘二物,以收其威」;書曰「朴作教刑」,是也。

산 양씨가 말하였다. “몽은 무지한 것이다. 말해주어도 깨닫지 못하고 이끌어주어도 자꾸 어기니, 형벌로써 위엄을 보이지 않으면 능히 따르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몽의 초기에는 형벌을 씀이 이롭다. 『예기』에 ’가초(회초리) 두 물건으로 그 위엄을 거둔다’고 했고, 『서경』에 ’회초리(朴)로 가르치는 형벌을 삼는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제가 — 동계 왕씨 (『주역전의대전』수록)

禁於未發之謂豫,書制官刑,儆于有位;用訓于䝉士。初隂暗,正䝉士也。

동계 왕씨가 말하였다. “아직 발하지 않은 때에 금지하는 것을 ’예(豫)’라 한다. 『서경』에 ’관형(관청의 형벌)을 제정하여 지위가 있는 자를 경계하고, 몽사(어리석은 선비)를 훈계하는 데 쓴다’고 했다. 초육의 음암(陰暗)함이 바로 ’몽사’이다.”

제가 — 건안 구씨 (『주역전의대전』수록)

治䝉之道,示之以刑,則人知警畏,自可撤其昏䝉之蔽,而无拘攣之患,開之機由此而始。初六以隂暗之䝉,切近九二陽明之賢,足以開之,故曰發䝉。

건안 구씨가 말하였다. “몽을 다스리는 도는 형벌로써 보이면 사람이 경계하고 두려워할 줄 알고, 스스로 가히 그 혼몽함의 가려짐을 거두어내어 구속되고 얽매이는 근심이 없게 될 것이니, 열리는 기틀이 이로 말미암아 시작된다. 초육은 음암의 몽매함으로 구이 양명(陽明)한 현인과 매우 가까워, 족히 그를 열어줄 수 있으므로 ’발몽’이라 한다.”

제가 — 운봉 호씨 (『주역전의대전』수록)

利用刑人,痛懲之也;用説桎梏,暫舎之以觀其後也。痛懲而不暫舎,一於嚴以徃,是不知有「敬敷五教在寛」之道也,故吝。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형인을 씀이 이롭다’는 것은 아프게 징계하는 것이요, ’질곡을 벗긴다’는 것은 잠시 놓아두어 그 뒤를 관찰하는 것이다. 아프게 징계하고 잠시 놓아주지 않아서 한결같이 엄격함으로써 나아가면, 이것은 『서경』의 ’공경히 오교(五教)를 펴되 너그러움에 있다’는 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므로, 부끄럽다.”

君師之道,正而已。屯初志行正,䝉初以正法。初之正猶懼失之於終,况不正乎?

또 말하였다. “임금과 스승(君師)의 도는 ’바름(正)’일 뿐이다. 준괘 초효는 ’뜻이 바름을 행하는 것’이고, 몽괘 초효는 ’법을 바로잡는 것’이다. 처음이 바르면 오히려 마침에 잃을까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처음에 바르지 않으면 어떠하겠는가?”

이 효가 動하면山澤損(41번 괘로 갑니다)